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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아트
검은 사막 팬픽 1
2021.04.02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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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일시 : 2021.04.03 00:16

 올비아 마을에서 가장 큰 행사라면 단연, 4월에 열리는 봄맞이 대축제다.

 오랜 옛날 봄이 되어도 겨울을 관장하는 신 그라시어가 겨울이 끝나도 물러나지 않자 봄의 신인 나시소스가 수선화의 씨앗을 내려주며 이것을 심으면 그라시어가 물러날 것이라며 신탁을 내렸고, 그 신탁대로 사람들이 씨앗을 심자 3일 뒤, 눈을 뚫고 수선화가 꽃을 피웠고, 그 수선화를 본 그라시어가 물러나며 봄이 찾아왔다. 겨우 봄을 다시 보게 된 사람들은 수선화로 봄을 되찾아 준 나시소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제(祭)를 지냈고, 이것이 올비아 마을에 내려오는 봄맞이 축제의 시작이다.

 지금은 엘리언이라는 유일신을 믿게 되면서 제사가 아닌 매년 4월, 봄을 맞이하는 축제의 형태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이 봄맞이 대축제는 올비아 마을에서 사는 연인들에게 가장 즐거운 축제이기도 했다.

 

“그런가요? 그럼, 올해는 최대한 간소하게 치를 수밖엔 없겠네요.”

 

 벨리아 마을로 간 이고르 바탈리를 대신해 올비아 마을의 임시 촌장이 된 나디아 로웬은 마을의 자경 대장이자 기술 교관이면서 동시에 주정꾼인 크록서스의 보고에 웃음이 끊이지 않던 얼굴을 찡그리며 이마를 짚었다. 임프가 대거 발생하며 벨리아 마을을 연결하는 도로가 완전히 끊겨 사실상 고립된 상황이며 임프가 무장을 갖추고 군사 훈련을 하는 것처럼 늑대를 사냥하고 나무를 공격하는 등 과격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보고 때문이었다. 이대로라면 올비아 마을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뜨거운 뙤약볕 아래의 농작물처럼 괴사하고 말 것이라는 보고에는 머리를 감싸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을을 탈출할 수 있도록 벨리아 마을에 배를 보내 달라는 연락을 보냈고, 현재 그에 관한 대답을 기다리는 중이지만, 이 많은 수의 사람들을 실어 나를 만큼 큰 배를 구한다는 건, 벨리아 마을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오래 전, 크론 성에 왕이 있었을 때만 해도 벨리아 마을이나 올비아 마을이 이 정도로 무력하진 않았다. 하이델 출신인 자신조차도 그 사실을 잘 안다.

 그때였다면 이딴 임프 놈들 따윈 힘쓸 일도 없이 쓸어버렸을 것이다. 왕정이 무너지고, 칼페온에 항복하고, 붉은 코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 임프 무리를 규합한 지금 올비아 마을이나 벨리아 마을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올해는 특별히 테르미안 해변에서 한다고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테르미안 해변? 너무 멀진 않을까? 북쪽으로 가면 해변이 나올. 아. 암초.”

 

 이유와 핑계로는 쓸만할 것이다. 여름이면 테르미안 해변에서 여름 축제를 여는 만큼 그 점을 이용하는 건 나쁘지 않다. 반발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곳까지 아이와 노인이 걸어서 이동하기엔 길이 불편하고 마차를 타고 이동하기에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게다가 해변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 너무 멀었다.

 물론 마을 사람들도 임프의 이상 현상에 관해 눈치를 못 챈 것도 아니고, 마을의 외곽, 특히 카스타 농장 주위로 목책을 쌓고 담을 높이 세우는 것만 봐도 마을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 수밖엔 없기에 테르미안 해변에서 축제한다 해도 따라오긴 하겠지만.

 

“멀어도 어쩔 수 없죠. 올해는 테르미안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해요.”

 

 크록서스의 말처럼 북쪽에 해안이 있기에 그곳으로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해안은 커다란 바위가 있고, 해상에는 암초가 군데군데 보인다. 그에 비해 테르미안 해변은 축제를 위해서 사전에 설치된 목책도 있고, 여가 시설도 완비되어 있어 축제 준비와 방어 준비, 탈출 준비에 적합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기우였을 뿐이었다면 올해는 특별한 한 해가 되는 것이고 만일 임프가 몰려온다면 마을 사람들을 사전에 안전한 곳으로 옮길 수 있으니 괜찮은 생각이었다.

 

“테르미안 해변 쪽에도 방비를 해둬야겠네.”

 

 크록서스는 강압적이라 할 만큼 단호하게 결론을 내리는 나디아 로웬에게서 로웬 가문의 핏줄이라는 게 쉽게 없어지는 건 아니란 사실을 깨닫고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고르 바탈리 촌장이 잠깐 벨리아 마을에 다녀온다며 마을을 떠난 직후 임프 무리로 인해 봉쇄되어버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좋아하던 술까지 끊었지만, 오늘만큼은 만취할 정도로 마시고 싶었다.

 말이 좋아 축제다. 올해는 특별하다는 것도 결국 허울 좋은 핑계다. 올비아 마을을 버리고 도망치는 것을 좋게 포장하는 것일 뿐이다. 비참하기 그지없지만,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이것 뿐이다.

앞으로 축제까지 남은 기간은 열흘. 그 사이에 자경단은 카스타, 올비아, 웨일, 테르미안 절벽 순으로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

 

“축제 준비는 마을 주민들끼리 해야 할 겁니다.”

 

 크록서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시간이 촉박하니 어쩔 수 없단 뜻을 명확하게 밝혔다. 그러며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존댓말은 크록서스를 당황하게 했지만, 로웬 가문의 기백에 눌렸다는 사실을 코웃음과 함께 흘려버렸다. 가문이 망한 것이지 그 자존심까지 무너진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경단이나 마을 사람들이나 모두 같은 올비아의 주민이지만, 군대가 없는 올비아에 자경단은 현재 군인과 비슷했다. 그렇기에 자경단에 이름을 올린 자는 소집령이 내려지면 강제로 모일 수밖엔 없다. 열흘 안에 방어선을 구축하려면 모여야 했다. 그러니 이전처럼 축제 준비를 자경단이 돕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 대신 해변의 상태를 확인할 자를 뽑아주세요.”

“네, 당장 보내죠.”

 

 크록서스는 시원스레 대답하며 방을 나섰다.

 

 

 

 목책을 세우는 일은 단순한 중노동이다.

 목책을 세울 땅을 파는 사이 옆에선 목책으로 쓸 나무에 홈을 파고 그것을 서로 홈에 맞춘 뒤 나무망치로 두들겨 그것을 서로 맞물리게 끼운다. 한쪽에선 삽질, 한쪽에선 망치질과 톱질이 쉬지 않는 곳. 그 사이마다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본 듯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붙잡고 끌고 가는 부모들이 뒤엉킨 이곳은 카스타 농장의 외곽으로 임프가 쳐들어올 길을 막는 작업을 하는 장소다.

 

“목책을 얼마나 더 세워야 하는 건데?”

“징징대지 말고 빨리 세워.”

 

 흙투성이의 손을 툭툭 턴 리는 나무망치를 내려놓고 땀을 닦으며 구시렁거리는 샘을 타박했다. 벌써 새롭게 세운 목책만 해도 10개였다. 카스타 농장 외곽을 목책으로 성벽이라도 쌓으려는 듯 계속 건설하라는 명령의 의도는 알고 있지만, 단순 노동만큼 지치는 것도 없는 게 현실이다.

 

“존은 어디 갔냐?”

“마름쇠 받으러 대장간에 간다던데.”

 

 면박을 주든 타박을 주든 관심 없다는 듯 미간을 찡그린 채 주위를 둘러보던 샘은 삼총사인 갈색 머리의 존이 보이지 않는단 사실에 리에게 물었고, 목책을 세울 땅을 파던 리는 삽을 바닥에 힘껏 박아 세우더니 마을 쪽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라는 것이 크록서스 자경 단장을 포함한 교관들의 설명이었지만, 실상은 전쟁. 금방이라도 임프 무리가 쳐들어올 것이라는 가능성은 마을 주민 누구라 해도 모를 수 없었다. 현재 목책을 세우는 곳은 비단 카스타 농장뿐만이 아니다. 올비아 마을 앞에도 목책과 돌담을 높게 쌓고 있었고, 올비아 마을의 뒤쪽, 웨일 농장과 테르미안 해안 절벽에도 목책을 세우고 있었다.

아무리 관심이 없고, 아는 게 없는 사람이라도 이 정도면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진짜 한바탕할 건가 보네.”

“저것들이 쳐들어오지만 않는다면 뭐.”

 

 샘이 긴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리는 다시 삽질을 시작하며 대답했다. 리의 말처럼 임프가 쳐들어오지만 않는다면 그저 그런 촌극으로 끝날 일이다. 봄을 맞이해 마을의 방어선을 정비했다고 웃고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길 올비아의 주민이라면 누구라도 바라고 원하고 있었다.

 

“야! 야! 야!”

“왜?”

“저기!”

 

 삽질을 다시 시작한 리를 쳐다보다 자신도 다시 망치를 들고 망치질을 하려는 순간, 샘은 문뜩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마을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카스타 농장 안으로 들어오는 한 여자가 보였다. 너무 짙어 빛에 따라 언뜻 흰색으로도 보일 만큼 짙은 검은 머리의 여성이 천을 덮은 광주리를 품에 안고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리 역시 자신을 급하게 부르는 샘의 손가락이 향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고, 광주리를 품에 안은 여성을 발견했다. 애니. 어려서부터 친구였고, 지금은 연인인 듯 친구인 듯 모호한 관계였다.

 

“점심 먹고 쉬었다 하세요!”

 

 카스타 농장에 들어서자마자 애니가 외쳤고, 그러자 일을 하던 자경 대원들이 들고 있던 연장과 통나무를 내려놓고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내며 애니의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치 먹이를 가져온 주인을 따르는 강아지처럼 모여드는 그 무리 속에 샘과 리도 있었다.

 

“피곤하지?”

 

 애니는 차례가 돌아온 리에게 샌드위치와 물병을 건네주며 다른 자경 단원들과는 다르게 친근하게 물었다. 그러자 주위에서 오오! 하며 탄성이 튀어나왔고, 리는 머쓱한 듯 손을 가볍게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똑같지 뭐.”

“너무 무리하지 마.”

“와우!”

 

 주위의 분위기를 모르진 않지만, 걱정되는 마음을 감출 생각이 없는 듯 애니는 다짐을 받으려는 듯 리의 손목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러자 주위에서 환호가 터졌다. 대놓고 즐기는 분위기다. 휘파람까지 분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리는 걱정이 가득한 애니의 얼굴을 보며 가볍게 씩 웃어줬다.

 애니가 이러는 이유를 모르진 않는다. 오히려 잘 안다. 모르는 게 이상하다. 지금은 그저 대비라고 했지만, 전쟁을 떠올리지 않는 이는 없다. 전쟁은 벌어질 것이고, 사람이 죽을 것이다. 그게 리일 수도 있고, 샘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애니일 수도 있다. 누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

 애니가 걱정하는 이유를 모를 수 없다.

 

“너도 무리하지 마.”

 

 리는 그렇게 말하며 샌드위치와 물병을 받아 들고 등을 돌렸다. 놀리는 환호성과 휘파람 소리가 들렸지만, 지금 그건 리의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였다. 지금 이 소리에 대응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로지 단 하나.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방어선이 뚫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모든 임프의 씨를 말려버릴 것이다. 그 다짐만 할 뿐이다.

 물병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올비아 마을의 뒷산을 민둥산으로 만들 기세로 벌목하고 그렇게 벌목된 나무를 깎아 목책을 만들어 방어선을 구축하는 사이 마을과 테르미안 해변에선 각각 축제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본래는 테르미안 해변에서만 진행할 생각이었지만, 대대로 축제를 기획했던 마을의 원로들이 그래도 풍작을 기원하는 파종만큼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고집을 꺾지 못한 탓이었다.

 고집을 꺾을 수도 없었다. 애초에 전쟁이 발발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저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클 뿐이다. 가능성만으로 원로들의 고집을 꺾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와아!”

 

 거리에 나오자마자 아이들이 점토로 빚은 나시소스 신상을 들고 옆을 스쳐 달려갔다. 몸을 바짝 붙이지 않았다면 부딪혀 신상이 부서질 뻔했지만, 아이들이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걸 보는 나디아 로웬은 기분이 좋은 듯 빙그레 웃었다. 매년 어른들이 축제를 준비할 때, 아이들은 모여서 신상을 만든다. 그것이 전통이고 관례였다. 아이들이 만드는 것인 만큼 어차피 얼마 못 가 부서지기 마련이고, 그게 지금이라 해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아이들은 또다시 신상을 만들 테니까.

 

“저렇게 뛰어다니는 걸 보니 정말로 축제가 가까워진 것 같군.”

 

 원로 중 한 명인 우스터가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껄껄 웃었다. 언제나 느긋하고 여유롭게 한가한 낮잠을 즐기는 모습과는 상반되는 그의 모습에서 그 역시 이번 축제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게요.”

“어딜 가는 건가?”

 

 우스터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나디아 로웬의 얼굴은 살짝 일그러졌다. 파종만큼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던 원로 중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냈던 한 사람이기에 그러했지만, 우스터를 본 순간, 아이들이 위험에 빠지진 않을까? 라는 걱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미 정해진 이상 원망할 생각은 없지만, 원망할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우스터의 질문에 나디아는 고개를 돌려 올비아 산기슭에 맞닿은 올비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4층짜리 건물을 가리켰다.

 

“수도원에 가려고요.”

“수도원에? 아, 맥주 때문인가?”

 

 우스터의 질문에 나디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원에서 담그는 맥주. 언뜻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보이지만, 엘리언 교가 이곳에 들어오며 세워진 수도원에선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헌금도 받지만, 맥주와 빵도 빚어 팔아 운영비를 번다. 지금처럼 올비아 마을이 봉쇄되지 않았을 땐, 주로 마을을 찾아온 상인이나 여행가들에게 팔아 운영비로 충당하면서도 잘 빚은 술은 언제나 축제에 맞춰 마을에 내어주고 있었다.

 맥주는 옛날엔 봄맞이 축제에서 나시소스에게 바치는 신성한 제물로 쓰이는 용도였지만, 나시소스를 믿던 종교에서 엘리언 교로 바뀐 지금은 제를 지내기 위함이라기보단 축제의 하나로 더 쓸모가 있었기에 수도원에서도 마을의 부귀와 안녕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맥주를 내어주고 있었다.

 

“수고하게.”

“네, 그러죠. 아저씨.”

 

 일부러 더 퉁명스레 대답했다.

 아이들의 안전보다 전통이 더 중요하다는 말은 아마 평생토록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스터의 배웅을 받고 어수선한 시장 골목을 돌자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비되지 않아 비가 내리면 진흙탕으로 바뀌는 시장 골목과는 이질감이 느껴질 만큼 다른 모습.

 나디아는 그 계단에 발을 올리기 전, 마치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 지그시 계단을 바라봤다. 비록 전쟁에 패했지만, 하이델은 그래도 도시로서의 형태는 잃지 않았다. 나가와 포건, 그리고 진흙 괴물을 피해 급하게 마을을 옮겨야 했던 글리시 마을도 이전엔 잘 정비된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 올비아 마을은 전쟁이 벌어지기도 전에 항복했다. 싸운 적도 없고 부서진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어딜 가도 제대로 정비된 곳은 없다. 오로지 이곳. 칼페온의 지원을 받으면서 동시에 헌금까지 받는 수도원 만큼은 마치 홀로 다른 세상인 것처럼 보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생각이 없었는데.

 마을을 지켜주고 번영과 안녕을 내려준다는 엘리언의 말을 믿고 따랐음에도 마을이 이렇게 되었기 때문일까? 나디아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계단을 올라갔다. 그러자 계단 위쪽에서 계단을 흙으로 덮는 까무잡잡한 피부의 건장한 청년들이 보였다. 구슬땀을 흘리며 흙으로 계단을 덮던 청년들은 나디아가 치맛자락을 살짝 잡은 채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나디아 역시 그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흙으로 계단을 덮고 있는 그들은 마을 축제 위원회의 청년들이었다.

 

 

 

“조심! 조심!”

“야! 거기 걸리잖아! 왼쪽으로 좀 더 틀어!”

“너무 빨라!”

 

 마치 훈수라도 두는 듯 청년들의 고성이 오가는 곳. 그곳은 올비아 마을의 수도원 앞이다.

 올해 수도원에서 내어준 맥주는 총 10통. 참나무로 만든 둥근 나무통이 청년들의 손에 이끌려 계단 위를 가득 채운 흙과 그 흙 위에 얹힌 나무판자 위를 조심조심 천천히 굴러 내려오기 시작하면서부터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다. 모든 통로가 계단으로 되어 있기에 매년 축제가 있을 때면 언제나 이렇게 어수선해진다.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모두가 다 축제를 성공시키고 싶은 마음에서 튀어나온 고성일 뿐이다. 맥주가 담긴 참나무통이 하나씩 계단 아래에 세워놓은 마차에 실릴 때마다 그들은 환호하며 서로를 향해 잘했다는 말을 주고받으며 웃으며 수도원으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그들의 고성에 악의가 없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게 마지막 통입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수직으로 연결된 승강기를 이용해 맥주 통을 지상으로 올린 그레이 비안츠는 이번에 올라온 게 마지막이라는 말을 하며 통 옆에서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은 채 공손한 자세를 취했고, 뒤의 다른 사제들 역시 그레이 비안츠와 같은 자세를 했다. 그러자 맥주 통을 옮기러 온 청년들과 나디아 로웬은 그레이 비안츠 앞에 마치 왕을 알현하는 사람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몸을 잔뜩 낮추며 앉았다.

 

“엘리언 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엘리언 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그레이 비안츠가 선창하자 다른 사제들은 물론이거니와 나디아 로웬과 마을 청년들이 그레이 비안츠의 말을 따라 했다.

 그러나 그레이 비안츠의 말을 따라 하는 나디아 로웬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

 

 사족은 이번 화만 쓸 생각이고 다음화부턴 사족을 가급적 쓰지 않을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썼던 내용을 완전히 삭제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이전에 썼을 땐 너무 마음만 앞섰던 것 같아 제가 봐도 너무 심각한 괴작이었기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더 낫겠단 생각 때문에서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월, 수, 금 연재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쓰던 붉은 사막 팬픽 역시 현재 공개된 공식 영상과 관련하여 구상했던 모든 부분을 다 버리고 순수 창작으로 갈 예정입니다.

 팬픽이라는 게 결국 원작을 얼마나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만, 2차 창작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단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검은 사막 팬픽도 다시 쓰게 된 것입니다. 순수 창작으로 가면 지금까지 썼던 것보다 훨씬 편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 순수 창작으로 갈 생각입니다.

 

 말만 앞서는 게 아니라 이제는 진짜 완결 가렵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완결이라는 뚜껑을 열기 전까진 묵묵하게 써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