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엘리언님께서 검은 돌을 이용해 들판과 나무, 짐승들을 지으시고 우리 문명족을 창조했나니.”
눈을 감은 채 십자가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사제의 입술에선 엘리언 여신을 향한 기도가 쉴 새는 없다는 듯 빠르게 튀어나왔다. 기도문을 읊을 때마다 맞물려 쥔 양손의 손가락에는 점점 더 강한 힘이 들어가 핏줄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그 탓에 가볍게 떨리는 손. 눈을 떴다면 맞잡은 그 손에서부터 피어나는 새하얀 안개 같은 것을 봤을 수도 있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감은 눈은 얼마나 절실한지 가볍게 떨리고 있을 정도였다.
“엘리언님은 이단을 만났을 땐, 몇 번 훈계한 뒤 멀리하라고 하셨다.”
손에서부터 시작된 새하얀 안개가 흘러내려 바닥에 고일 때쯤엔 감정이 복받친 듯 좀 더 절박하게 몸을 더 웅크리며 기도문을 외웠다. 그러자 이젠 목에서, 등에서, 허리에서, 다리에서, 손뿐만이 아니라 몸 전신에서 그 새하얀 안개가 연기처럼 피어올라 바닥에 고이기 시작했다.
“곧 엘리언님만이 유일한 구원임을 깨닫고, 믿음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그러자 그 순간, 입김이 서렸다.
기도가 계속될수록 사제를 중심으로 천천히 주위의 풍경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십자가 앞에서 힘차게 타오르던 두 개의 촛불마저 흔들리던 그 형태 그대로 얼어붙자 실내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얼음동굴이라도 된 것처럼 고드름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얼음 속에서 그림자가 살짝 흔들렸다.
“엘리언님께서 이르시길 그래도 믿음의 길로 들어서지 않는다면 그들을 냉혹하게 벌하고 참회케 하여 그들 스스로 눈물을 흘리며 돌아오도록 하여라.”
실내를 비추고 있던 십여 개의 촛불이 모두 완전히 얼어붙어 흔들릴 일이 없음에도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몸을 일으켜 세우는 그림자들.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인간인 것처럼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그림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 그림자들의 손에는 새하얀 냉기를 흘리는 창인 듯 칼인 듯 길쭉하게 생긴 무기와 둥근 방패가 쥐고 있었다.
“엘리언님께서 이르시길 나를 위한 성지를 세우고 나를 위한 성역을 만들어 나를 위한 성전을 일으키라 하셨으니. 그 뜻은 곧 세상 그 모든 곳에 엘리언님의 축복이 닿도록 하라는 큰 뜻임이 분명할지어다.”
더는 얼릴 곳이 없어진 얼음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듯 바닥에 닿은 사제의 군청색의 치맛자락부터 서서히 얼리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모습을 드러낸 여섯 개의 그림자가 무기를 바닥에 내려찍으며 사제의 뒤에 허리를 숙여 엎드렸다. 그 순간.
“시스터 엘레나!”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는 사제 역시 들어서 알고 있었다. 워낙에 급하게 뛰어오는 소리인 데다 수도원의 특성상 떠드는 이 하나 없어 그 소리가 생각보다 훨씬 컸기에 더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급하게 뛰어오던 발소리가 문 앞에 멈춰 서는 것 같더니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고, 그 순간, 동시에 촹! 실내를 덮었던 고드름이 폭발하듯 사라졌다.
문밖으로 냉기가 흘러나가기도 전이었고, 밖에서 들어오려던 이의 눈길이 실내에 머물기도 훨씬 전이었다. 엘레나의 이름을 부르며 급하게 뛰어 들어온 사제가 실내를 가득 덮은 얼음을 눈치채기도 전에 그 얼음들은 물론이거니와 그림자까지 이미 모습을 감춰버린 뒤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대피한다는 말 못 들으셨나요? 왜 아직 이곳에 계신 겁니까?”
들어오자마자 호들갑 떨며 말하는 사제의 얼굴은 심각하다고 말할 정도로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미 대화만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것 같았지만, 기도하던 사제 엘레나의 얼굴은 반대로 너무나 편안했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이 그저 술자리의 농담쯤에 불과할 뿐이라는 듯 그런 표정이었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주민의 안녕을 빌고 있었어요.”
“카스타 농장에서 단원들이 임프와 전투를 시작했다고 해요. 곧 마을에도 쳐들어올 거라 합니다.”
카스타 농장.
평온하던 엘레나의 눈이 살며시 꿈틀했다. 카스타 농장이라면 바로 코앞까지 왔단 뜻이다. 그제야 헬레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무릎을 꿇느라 구겨진 치마를 두들겨 주름을 폈다. 깨끗하게 펴진 못해 구겨진 곳이 많았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지금 구겨진 옷을 신경 쓸 때는 아니었다.
“어서 피하는 게 좋겠네요.”
“제가 하는 말이 그겁니다.”
문을 열고 들어왔던 사제는 헬레나의 말에 어이가 없단 듯 말을 내뱉었다. 그리곤 문을 잡고 서서 헬레나를 보며 어서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에 헬레나 역시 바쁜 걸음으로 기도실을 빠져나갔다.
따스한 햇볕이 만들어낸 새하얀 빛을 흩날리며 철퇴가 날아들었다. 리는 그 빛을 피하려 오른발을 급하게 뒤로 무르며 창 자루의 아래를 왼손을 급하게 들었다. 그러자 퍽! 창 자루 끝에 묵직한 충격이 닿았다. 창 자루의 끝이 임프가 휘두른 철퇴보다 조금 더 길었을 뿐이지만, 그것이 임프의 턱을 돌아가게 만들기 충분했다.
턱이 꺾인 임프가 입안이 터진 듯 피를 토하며 고통을 참으려는 듯 턱을 감싸고 뒤로 물러나자 그 순간,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며 임프의 얼굴을 향해 창 자루를 내찔렀다.
“켁!”
창 자루가 임프의 긴 코를 가격하자 재차 피가 튀었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임프의 앞을 가로막고 철퇴를 휘두르며 또 다른 임프가 덤벼들었다. 그 모습에 리는 임프의 가슴을 향해 창을 힘껏 내질렀다. 푸욱! 창을 쥔 손에 힘을 줘 창을 더 단단하게 쥐었을 뿐, 그리 길게 내뻗지 않았음에도 달리는 관성의 영향으로 단단한 가슴뼈가 더 쉽게 부서지며 창이 깊게 박혔다.
“켁!”
비명과 함께 임프의 몸이 축 늘어지며 철퇴와 투구게 등껍질로 만든 방패가 아래로 떨어졌다. 툭! 투둑! 그러자 이번엔 작은 조약돌이 돌담에 날아와 부딪혔다. 임프 병사가 던진 돌멩이라는 걸 확인한 순간, 리는 창 위에 기댄 채 축 늘어진 임프의 사체를 발로 걷어차며 창을 힘껏 뽑았다.
깡! 깡! 깡!
그러자 투구와 가슴에 돌멩이가 날아와 세차게 부딪혔다. 아프진 않지만, 짜증이 날 정도로 불쾌하다. 창을 앞으로 들어 돌멩이를 막으며 뒤로 물러나자 옆에서 둥근 방패가 불쑥 튀어나왔다. 고개를 돌리자 옆에서 함께 싸우던 대원이 자신의 방패를 들어 돌멩이를 막아주는 게 보였다.
“불덩이다!”
옆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불덩이를 만드는 요술사의 무리가 보였다. 나무를 깎아 만든 지팡이를 들어 올린 채 승리를 확신한 미소를 짓는 요술사의 얼굴이 너무나 선명하게 눈에 박혔다. 요술사가 가장 먼저 불덩이로 방어선을 뚫으면 돌격병으로 길을 열고, 병사들은 돌멩이를 던져 시간을 번다. 그 사이 마력을 모은 요술사가 다시 불덩이를 난사해 방어선을 재차 무너뜨린다. 단순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는 전술이다.
이 단순한 전술로 목책 앞에 뿌려놨던 마름쇠조차 흙 속에 파묻혀 제 역할을 못 했다.
“으악!”
퍼퍼퍼펑!
요술사가 쏘아 올린 불덩이가 날아와 목책을 터트리고 돌담을 무너뜨렸다. 그것에 휘말린 단원들의 비명이 폭발과 함께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것은 함께 있던 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패를 들어 몸을 가려줬던 단원과 함께 폭발에 휘말려 나가떨어졌다. 바닥에 처박히듯 엎어지자 삐이이! 귀가 멍했다. 마치 누군가 소리를 지워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ㅇㅇ!”
방패로 자신을 가려줬던 단원의 몸 위에 올라탄 임프가 병사의 투구 위로 철퇴를 후려치는 게 보였다. 단원이 뭐라 외치며 방패를 휘두르는 게 보였지만, 단원의 저항은 곧 그 의미를 상실했다. 임프는 투구게 껍데기로 만든 자신의 방패를 들어 그 나무 방패를 막으며 철퇴를 재차 휘둘렀다. 붉은 피가 튀는 게 보였다. 퍽퍽! 비릿하게 웃으며 철퇴를 휘두를 때마다 투구 채로 찌그러지는 듯 철퇴가 점점 더 얼굴 안쪽으로 깊숙하게 박히는 게 보였다.
그때, 누군가 등을 짓누르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날카로운 손톱을 세운 채 웃고 있는 임프가 있었다.
“ㅇㅇ! ㅇㅇㅇ! ㅇㅇ!”
내가 말하는 거지만, 내 귀에 들리지 않는 외침을 내뱉으며 리는 일어나려 애썼다. 죽고 싶지 않아. 죽을 순 없어. 여기서 죽을 순 없어! 그러나 투구가 강제로 벗겨지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애니. 애니의 불안해하던 눈동자가 떠올렸다. 떨리던 그 눈이 떠오른 순간, 리는 억지로 손을 움직여 투구를 잡았다.
퍽! 손등에 날카로운 통증이 박혔다. 칼처럼 날카로운 임프의 붉은 손톱이다.
“ㅇ!”
비명을 지르며 손을 휘저어 임프의 손톱을 뿌리치자 손등에 박혔던 손톱이 빠졌지만, 손등에 새겨진 통증은 사라지지 않고 되려 커졌다. 통증에 손이 오그라들었다. 더는 투구를 잡을 수도 없다. 임프도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 다시 투구를 벗기려 잡아당겼다. 통증으로 떨리는 손을 들어 투구를 잡았지만, 그 힘에 저항할 힘은 없었다. 힘없이 잡은 손에 투구는 맥없이 점점 뽑혀나가며 흙과 피와 땀이 잔뜩 묻은 목덜미가 투구 아래로 드러났다.
애니.
퍽!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텐데,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투구를 잡아당기던 힘도, 등을 짓누르던 힘도 모두 사라졌다. 나동그라지는 임프와 그런 임프를 향해 달려드는 거대한 덩치의 갑옷이 보였다. 넘어진 임프가 급하게 주위의 돌멩이를 집어 들고 그 갑옷을 향해 던졌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칼을 가볍게 휘둘러 돌멩이를 옆으로 쳐내는 모습은 여유로움까지 보였다. 그 직후 임프의 가슴에 장검이 박혔다.
“쳐라!”
“와아!”
함성 속에서 임프의 가슴에 장검을 박아 넣은 크록서스의 외침이 들렸다. 그 함성을 듣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누군가 양쪽에서 리의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같은 자경단 갑옷을 입은 자경단원들. 왜 이제야.
“쏴라!”
“화살 발사!”
슈슈슈슉! 크록서스의 명령과 함께 지붕 위에 올라간 궁수들의 지원 사격이 시작됐다. 궁수를 또 다른 말로 전장의 악사라 부른다. 그것은 단체로 모여 활을 쏠 때 나는 이 경쾌한 소리가 마치 곡을 연주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것도 적을 향해서 연주하는 죽음의 노래다. 날아드는 화살을 본 순간, 재차 불덩이를 날리려 준비하던 요술사들의 표정이 급하게 일그러졌다. 웃음이 사라진 요술사 무리의 얼굴엔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미소가 지워졌다.
“켁!”
“키엑!”
푸푸푸푹! 날아간 화살이 비처럼 임프 무리를 향해 쏟아진다. 비가 웅덩이를 만드는 것처럼 화살이 박힌 곳에 붉은 피가 튀었다. 그 비가 끝나기도 전에 화살이 쉬지 않고 날아든다. 장마와 같다. 언제 그칠지 모를 비와 같다. 화살에 맞은 요술사가 쓰러지자 요술사의 지팡이 끝에서 피어올랐지만, 요술사가 죽으며 목표를 잃은 불덩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고 방황하다 임프 무리를 향해 날아가 처박힌다.
펑! 펑! 펑! 격렬하게 터지는 불꽃에 임프 무리는 돌격할 힘을 잃고 우왕좌왕 날뛰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단원들은 카스타 농장을 지키다 숨을 거둔 단원들의 복수를 위해서 임프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한순간. 임프가 조금만 더 빨리 카스타 농장의 방어선을 뚫었다면, 크록서스가 병사들을 이끌고 도착하는 게 조금만 더 늦었다면 카스타 농장에 펼쳐진 광경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반격을 맞이한 임프 무리가 혼비백산하며 등을 보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망칠 생각조차 못 하게 하겠다는 듯 도망치는 임프 무리의 등 뒤로 화살이 쏟아졌다. 마을에서 달려온 단원들도 창과 칼을 앞세워 임프의 뒤를 쫓았다.
“쫓지 마라!”
“전군 정지! 정지!”
그러나 자경단원들의 분노를 가라앉힌 건 크록서스의 명령이었다.
“부상자를 먼저 확인하고 마을로 옮겨라!”
“네!”
옆에 있던 자경단원에게 명령을 내린 크록서스는 카스타 농장을 둘러봤다. 쏟아진 불덩이에 맞은 카스타 농장은 빠르게 불이 번지고 있었다. 이곳을 지켜라. 명령을 받았던 자경단원은 총 20명. 그러나 언뜻 봐도 살아남은 자경단원은 4~5명 안팎이다.
“후.”
한숨이 나왔다.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임프만 봐도 그 수에 질릴 정도다. 언뜻 봐도 몇백. 병사들과 뒤엉켜 죽은 임프만 대충 살펴도 백여 마리는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저 많은 수의 임프를 눈앞에 뒀다면 자신은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단순히 생각하면 도망쳤을 것이다. 나중에 탈영으로 붙잡혀 참수를 당하더라도 도망쳤을 것이다. 이길 수 없다. 이길 가능성이 없다. 이길 수 없는 적을 맞이한 이의 가장 현실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단원들은 그런 임프 무리에 맞서 싸웠다. 누구보다 용감하게 싸웠을 것이다. 누구보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젠장.”
크록서스는 서부 캠프 방향을 노려보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단장님, 농장은 어떻게 할까요?”
또 다른 자경단원이 자신에게 묻는다. 크록서스는 고개를 돌려 그런 질문을 하는 자경단원을 지그시 쳐다봤다. 이곳은 마을을 지키기 위한 요새였다. 임프가 물러난 이상 서둘러 불을 끄고 다시 어설프게나마 방어선을 구축하면 될 일이다. 그 안에 임프가 다시 돌격해 올 리는 없다. 그들 역시 싸운 이상 휴식은 필수니까.
자경단원에게서 눈을 떼고 주위를 둘러봤다.
“농장을 버린다. 농장에 불을 놓고 마을로 퇴각하라!”
“퇴각 준비!”
“퇴각 준비!”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욕심이다. 어차피 이곳은 뚫렸다. 남은 병력을 재차 쪼개 이곳으로 보낼 순 있겠지만, 그랬다간 마을을 지킬 병력이 더 많이 줄어든다. 그게 오히려 악조건이 될 수도 있다. 아니, 그보다 이런 개죽음을 또 부하들에게 떠넘길 순 없다. 차라리 농장을 버리고 마을에서 농성하는 게 더 현실적이다.
젠장. 내뱉지 못한 욕지기가 입에 걸렸다.
“단장님!”
“무슨 일이냐?”
그때, 마을 쪽에서 발이 빠른 자경단원이 헐레벌떡 급하게 뛰어오는 게 보였다. 왜 마을 쪽에서? 라는 생각에 급하게 그 자경단원에게 달려가 그의 두 팔을 붙잡았다. 그러자 자경단원의 팔이 심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펑! 펑! 펑!
그 순간, 마을 쪽에서 폭음이 일었다. 그 폭음에 놀란 크록서스가 마을을 향해 시선을 돌렸을 때, 마을 입구 쪽에서 불길이 치솟는 게 보였다.
임프가 몰려온다.
줄리아는 급하게 마을을 떠나는 크록서스의 뒤를 쫓아가다 문뜩 이상한 생각이 들어 마을 입구의 너른 돌 위에 돌과 나무로 세운 참호 안에 들어가 화살집을 참호 안에 기대어 세워놓고 주위를 살폈다. 왜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든 건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몸 주위를 타고 흐르는 바람이 왠지 모르게 불쾌하다 할 만큼 이상하게 느껴졌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이상한 기분은 크록서스가 카스타 농장에 도착했을 때쯤, 악몽이란 단어로 돌아왔다.
그 모습은 마치 파도가 치는 것 같았다. 성난 파도처럼 마을을 향해 밀려드는 임프의 무리. 그리고 그들 속에서 생겨나는 수십, 수백 개의 불덩이를 본 순간, 줄리아의 입에선 비명처럼 들리는 외침이 튀어나왔다.
“임프다!”
외치는 것과 동시에 화살집에서 화살을 뭉텅이로 잡아 꺼낸 뒤, 한 개의 화살만 오른손에 쥔 채로 활과 화살을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 활시위를 당겼다. 핑! 핑! 핑! 핑! 핑! 힘껏 당겨진 활시위를 푸는 것과 동시에 왼손에 쥐고 있던 두 번째 화살을 오른손으로 옮겨 쥐고 다시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그렇게 반복하자 첫 번째 발사한 화살이 채 요술사의 머리를 꿰뚫기도 전에 줄리아의 손을 떠난 화살은 다섯 개가 넘어갔다.
마지막 화살을 쥔 줄리아는 다섯 번째 화살이 다섯 번째 요술사의 이마를 꿰뚫는 걸 확인한 뒤에야 여섯 번째 요술사를 향해 활시위를 놓았다.
“후!”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그 순간, 임프 진영에서 폭음이 일며 불길이 치솟았다. 그것은 길고 지루한 공방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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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한 레인저 스킬 : 우직한 칼날 바람 II
묘사한 임프의 전술 : 양동작전(성동격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