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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아트
검은 사막 팬픽 8
2021.04.1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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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일시 : 2021.04.19 14:33

 몸 전체를 가리고도 남을 거대한 방패 크라툼을 앞세운 순간, 방패를 꿰뚫어버릴 만큼 강한 힘이 방패의 겉을 때렸다. 깡! 종을 치는 듯한 소리가 진동되어 팔 근육을 울렸고, 그것은 곧 짓누르는 힘이 되어 다리를 눌렀다. 그러자 뒤로 물린 오른발에 힘을 줬음에도 무릎이 꺾였다. 모래 때문에! 모래 때문이다. 모래만 아니었다면! 에페리아 항구 인근의 해변에서 훈련했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미끄러움 때문에 무릎이 꺾였다는 사실이 짜증이 났다.

 

“ㅇㅇㅇ!”

 

 당한 만큼, 밀린 만큼 다시 되돌아가려는 용수철처럼 다리에 힘을 주고 방패를 앞으로 밀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방패를 짓누르던 힘이 반발하듯 버텼지만,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왼팔에 힘을 주고 방패로 후려치듯 그 힘을 뿌리쳤을 땐, 까가가강! 방패의 겉을 긁는 소리와 함께 갈고리 창이 옆으로 빗겨나가는 게 보였다. 그 끝에 보이는 당황한 눈빛의 검은 피부를 가진 자를 본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철퇴. 샛별이라는 이름의 철퇴를 위에서 아래로 힘껏 내리찍었다.

 퍽! 붉은 핏물이 분수처럼 허공으로 솟아내며 초점을 잃은 얼굴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ㅇㅇ!”

 

 살았다. 그리고 죽였다. 쓰러진 적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모래 속으로 스며드는 걸 보고 있자니 오른쪽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또 다른 검은 피부의 노예 병사 맘루크가 갈고리 창을 오른쪽으로 빗겨 들고 달려오는 게 보였다.

 바로 코앞. 화상을 입은 것처럼 코 밑으로 보이는 기이한 주름이 사실은 얼굴을 덮은 검은 수염이었다는 사실과 그 수염 아래의 입술에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을 만큼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온 그 맘루크를 본 순간, 급하게 오른발을 왼발 뒤로 물렀다. 그러자 균형이 빠르게 허물어졌다. 당연한 일이다. 스스로 균형을 무너뜨리는 동작을 했으니.

 무너진 균형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몸을 오른쪽으로 돌리는 것과 동시에 방패를 쥔 왼팔에 힘을 줘 방패를 들어 올렸고, 샛별을 쥐고 있던 오른손으로 방패의 위를 잡고 몸 안쪽으로 잡아당기면서 들어 올린 방패를 오른쪽으로 힘껏 끌어당겼다. 그러자 자신의 몸보다 더 커다랗게 느껴졌던 방패 크라툼이 옆으로 누우며 마치 날이 서지 않은 커다란 칼이라도 된 것처럼 맘루크를 향해 횡으로 크게 그어졌다.

 퍼걱!

 어깨와 팔을 짓누르는 무게가 고통으로 다가왔다. 왼쪽 팔이 어깨부터 관절이라는 관절은 모조리 뽑혀 분리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순간, 승리의 미소가 당혹으로 바뀌고 당혹으로 바뀐 얼굴에 방패가 박혀 일그러졌을 때, 맘루크의 두 눈이 향해선 안 되는 방향으로 제각각 흩어지는 걸 봤을 땐, 그 고통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맘루크가 쓰러지자 그 뒤에서 또 다른 맘루크가 놀란 눈으로 쓰러진 맘루크를 굽어보는 게 보였다.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며 방패의 뾰쪽한 아래를 그 맘루크의 가슴을 향해 힘껏 찔렀다. 퍽! 미늘 갑옷을 입은 맘루크 병사가 저항조차 못 하고 방패에 맞아 뒤로 쓰러졌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모래 위에 쓰러진 맘루크 병사의 몸 위로 방패를 내리찍었다. 퍼걱!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방패를 타고 올라와 뇌리에 박혔다.

 

“ㅇ!”

 

 그 순간, 까강! 갑옷 위로 둔탁한 통증이 빠르고 강하게 흔적을 남기고 떠나가는 게 느껴졌다. 급하게 고개만 돌려 통증을 남긴 자를 확인했다. 등 뒤에는 어느새 돌아온 건지 칼과 방패를 쥔 흰 피부를 가진 자가 재차 칼을 내지르는 게 보였다. 그 칼끝이 오른쪽 겨드랑이 밑을 노리고 찔러 들어온다는 사실에 오른발을 다시 왼발 뒤쪽으로 보내며 몸을 급하게 돌리며 그 병사를 향해 방패를 내밀었다.

 그러나 그것을 예상했다는 듯 칼이 다시 떠나간다.

 그 이유가 궁금해 앞세운 방패 위로 고개를 내민 순간, 등 뒤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머리에 쓰고 있던 투구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투구가 깨지고 머리가 쪼개지는 것만 같은 충격이다. 퍽! 묵직한 힘이 방패를 힘껏 후려친다. 그러자 재차 뒤로 밀리며 무릎이 꺾였다. 머리가 멍해졌다. 정신이 없었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가 되기 전에 구겨진 투구를 벗기려는 거친 손이 느껴졌다.

 저항하려 철퇴를 휘두르며 일어나려 했지만, 그와 동시에 “컥!” 가슴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그 통증의 정체를 살피고자 고개를 숙였을 땐, 갈고리 창이 갑옷을 뚫고 가슴에 박혀 있는 게 보였다.

 

“ㅇㅇㅇㅇㅇ!”

 

 가슴에 느껴진 통증이 몸 전체를 퍼져나가자 모든 것이 무기력해졌다.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음 속에서 누군가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퍼퍼퍽!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얼굴 앞을 가리고 있던 그림자가 사라졌고, 등 뒤를 가리고 있던 그림자도 뒤이어 사라졌다.

 그러자 몸이 기울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누군가 안아주었다. 따스한 품. 그렇게 느껴졌다.

 

“엄, 마?”

“ㅇㅇㅇㅇㅇ!”

 

 아파. 나 아파. 엄마. 나 아파. 엄마. 엄마. 엄...

 

 

 

“윽!”

 

 신음이 튀어나왔다. 가슴에 느껴지는 격통에 눈을 뜨자마자 엘레나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신음이었다. 몸부림치듯 가슴을 부여잡고 신음을 흘리며 침대 위를 뒹굴 때 누군가 곁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사제님? 괜찮으세요?”

“가슴, 가슴이.”

 

 창에 찔렸기 때문인지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마치 숨을 쉬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아팠다. 몸의 피가 모조리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아팠다. 다가온 이가 침대에 편하게 누우라는 말을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소리를 들을 정신은 없었다. 마치 물속에 잠수한 채로 물 밖의 사람이 외치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멍했다.

 

“진정제를 가져와!”

 

 또 다른 이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죽고 싶지 않아.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아. 이대로.

 모든 소리가 멀어지며 눈앞이 어두워졌다.

 

 

 

“수녀님이 깨어나셨지만, 가슴에 통증을 호소하더니 다시 기절했습니다.”

 

 수도원의 엘레나 사제가 깨어났지만, 다시 기절했다. 라는 보고가 전달된 건 야간 경비를 위해 첫 번째 부대가 막 방을 나섰을 때의 일이다. 보고를 받은 나디아 로웬은 그 사실을 알려온 플로린 마을 출신의 아칸을 바라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아칸에게 화가 난 건 아니다. 사제들은 모두 해변으로 가는 걸 봤기에 다시 마을에서 발견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적인데, 지하실에서 이상한 빛에 휩싸인 채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고, 엘레나 사제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그 벽에는 사람이 드나들었다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저 무기. 나디아 로웬은 청년들이 가져와 현재 방 한켠에 기대어 세워놓은 커다란 방패와 철퇴를 향해 눈을 돌렸다. 본 적은 없지만, 들은 적은 있다. 그것과 같은 무기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분명히 들은 적이 있었다. 20여 년 전, 칼페온과 하이델 연합군이 발렌시아를 향해 진격했을 때, 칼페온에는 몸 전체를 가릴 만큼 커다란 방패와 철퇴로 무장한 여자들로만 이뤄진 군대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대로 상상만 했었지만, 상상했던 것 덕분에 잊을 일이 없었던 그 무기와 비슷한 무기라는 사실을 나디아는 모를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다시 깨어나면 알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칸이 다시 나가자 나디아는 함께 있던 크록서스와 다른 팀장들, 그리고 현재 마을 안의 유일한 모험가인 방랑자와 격투사를 차례로 훑듯이 쳐다봤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과거의 망령인가? 아니면 그저 닮았을 뿐일까? 하필이면 이렇게 임프의 공격을 받는 이 시기에 저 무기를 들고 나타난 엘레나 사제는 대체.

 나디아는 탁자 위의 올비아 마을 지도를 쳐다보며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엘레나 사제에 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엘레나가 사제가 된 이유도 3년 전, 비가 내리던 밤. 수도원 뒤의 올비아 산자락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것이 인연이 되어 수도원에서 거둬들였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나 엘레나라는 이름도 수도원에서 지어줬을 만큼, 깨어난 엘레나 사제는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고, 사실상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엘레나 사제 역시 자신이 누군지 아는 게 없었다. 그래도 의심한 적은 없었다. 지금도 저 무기가 아니라면 의심할 이유도 없다. 아니, 어쩌면 엘레나 사제가 거짓말을 해왔던 것일지도.

 시작된 의심이 점점 몸집을 부풀리기 시작한다는 게 느껴졌다.

 

“후, 줄리아 씨.”

“왜 부르시죠?”

 

 아직도 감정이 풀리지 않은 건지 퉁명스레 대답하는 줄리아를 바라보며 나디아는 한숨을 삼켰다. 차라리 가장 싫어하던 부류인 모험가가 더 믿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줄리아는 약속한 보수보다 더 많은 일을 해주고 있었다. 크록서스를 구출하는 데 있어서 줄리아의 도움이 없었다면 애초에 작전 자체가 성립되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 덕분에 크록서스는 무사히 마을에 올 수 있었다.

 

“야간 경비를 따로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그러죠.”

 

 줄리아는 긴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마치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할 생각이었다는 듯이 대답하는 줄리아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피곤한 탓이다. 고용되자마자 더크와 더불어 가장 바쁘게 움직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활줄을 두 번이나 교체할 정도로 바쁘게 돌아다니며 작전을 수행했기에 쌓인 피로가 몸을 짓누르고 있었지만, 줄리아는 순순히 대답했다.

 야습은 전쟁에서 빠질 수 없는 작전 중 하나다. 양동작전까지 하는 임프가 야습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렇기에 목숨을 보전하자면 휴식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건 경비를 잘 서는 것이라는 걸 줄리아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긴 고민 따윈 없이 수긍했던 것이다.

 단.

 

“추가 보수는 요구해도 되겠죠?”

“그 보수에 관해선 추가 협상하는 건 어떨까요?”

“그러죠.”

 

 나디아의 대답에 줄리아는 액수가 정해지지 않은 백지수표를 받은 사람처럼 밝아진 표정으로 회의실을 나섰다. 나디아는 회의실 안의 사람들을 다시 한번 쳐다보더니 회의를 다시 이어갔다.

 

 

 

 춥다.

 산자락을 타고 내려오며 싸늘해진 바람이 옥상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줄리아의 귀를 가장 먼저 스치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 고개를 숙이며 몸을 잔뜩 웅크렸지만, 벌어진 옷깃과 소매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마저 막을 순 없었던 줄리아의 몸은 저도 모르는 새에 부르르 떨렸다.

 봄인 건 맞아? 곁에 누군가 있었다면 아무리 북쪽 지방이라지만, 봄바람이 부는 4월의 밤이 이렇게 추웠던 적이 있었는지 묻고 싶을 정도였다. 당장이라도 다시 내려가 추가 보수에 관한 협상을 지금 당장 다시 하자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 재협상을 위해 다시 내려간다는 게 얼마나 웃긴 일인지 잘 아는 줄리아였기에 옥상으로 발을 디디며 녹이 슨 철문을 다시 닫았다.

 끼이익! 쿵! 부서지지나 않을까? 걱정될 만큼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문을 닫고는 몸을 따뜻하게 데워줄 불 하나 없는 옥상에 나오자 옥상의 난간 끝. 꼭짓점에 서서 주위를 감시하는 자경단원들이 보였다. 불을 켜면 위치가 발각될 수 있으니 옷을 여러 겹 껴입고 추위를 견뎌내는 중이었다. 저들도 불쌍하네. 그나마 봄이고, 한겨울만큼 추운 건 아니라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라지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 리 없는 자경단원 중 한 명이 다가와 묻는다. 왜 왔을 것 같냐고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내 불쾌한 감정을 이 사람들에게 표출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는 걸 줄리아 역시 모르진 않았다.

 

“좀 둘러보러 왔습니다.”

“밤눈이 밝은 분이 오시니,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자경단원의 말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피식! 하고 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걸 억지로 삼켰다. 자경단원에게서 옥상의 상황을 대충 전해 들은 줄리아는 곧바로 화살집을 난간에 기대어 세워놓고는 활을 쥐고 서서 수도원 뒤편의 올비아 산자락을 지그시 노려봤다.

 올비아 산자락.

 발레노스 산맥의 북쪽 끝에 만들어진 올비아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올비아의 약점인 그곳을 노려보는 줄리아의 눈빛은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날카로웠다. 임프가 어떤 작전을 펼칠지는 알 수 없지만, 만에 하나 이 산자락을 손에 넣는다면 올비아를 지킬 방법이 없어진다.

 마을 사람들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저 산자락에 꽤 많은 양의 마름쇠를 뿌려놨다지만, 안심할 순 없었다. 처음 회의 때 산자락 위에 망루를 세우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망루를 다시 세울 시간이 부족하며, 또한 병력 운용에 문제가 있단 이유로 그 안은 거절되었다.

 애초에 왕국이 있었을 때만 해도 산자락 위에 초소가 있었지만, 왕국이 무너지고 칼페온에 항복한 이후 정규군이 사라진 이 마을엔 초소를 운영할 힘은 없었기에 버려진 초소는 쉽게 엉망이 되었고, 지금은 있었다는 흔적조차 없다. 참으로 씁쓸한 이야기다.

 길어질 것 같은 밤에 줄리아는 마치 하프를 튕기는 음악가처럼 활줄을 가볍게 튕겼다.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임프의 습격은 없었다.

 지리적 이점을 깨닫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임프는 움직이지 않았다. 좋게 말해선 평화로운 밤이었고, 나쁘게 말해선 쓸데없이 피곤하기만 했던 밤이 지나고 아침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던 줄리아가 아침 근무조와 교대하고 옥상을 내려왔을 땐, 어젯밤 갑자기 나타나 소란을 일으킨 엘레나 수녀가 막 깨어난 직후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시는 게 있습니까?”

“아뇨, 제가 왜 여기에 있는 건지도.”

 

 바쁘게 뛰어가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 도착한 병실에선 먼저 도착한 나디아와 크록서스 등을 포함한 몇 명의 주민들이 엘레나 사제 앞에 뒤섞여 서 있었다. 줄리아가 도착했을 땐, 아칸이 건네준 약을 마시고 다시 침대에 누운 엘레나 사제를 향해 나디아 로웬이 질문을 쏟아낸 직후였다.

 그러나 나디아의 질문에 오히려 당황한 기색을 보인 건 엘레나 사제였다. 마치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냐고 되묻는 것 같은 표정으로 주위의 사람들을 둘러보는 시선에선 두려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무엇입니까?”

“아, 비안츠 사제님께서 주민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기도를 하다가. 기억나지 않아요.”

 

 나디아의 옆에 있던 크록서스가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엘레나는 미간을 찡그리며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하더니 이내 생각난 듯 고개를 들고 크록서스를 보며 대답했다. 해변에서 주민들을 모아놓고 기도했던 것은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러나 그 이후의 일들은 기억나는 게 없었다. 마치 책을 읽다가 기도하는 장면까지 보고 잠시 나갔다 온 사이 누군가 책의 중간을 모조리 찢어놔 중간 부분을 하나도 보질 못한 채 이곳 병실에서 깨어난 장면을 보는 것처럼 기억나질 않는다.

 

“그럼 저 무기들은 뭐죠? 말해줄 수 있는 게 있나요?”

 

 나디아는 병사들이 가져와 벽에 기대어 세워놓은 방패와 철퇴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무기도 기억나는 게 없나요? 라고 다그치고 싶었지만, 억지로 억누르며 무기에 관해서만 물었다. 그것은 엘레나에 관한 의심을 버리는 것과 동시에 엘레나를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엘레나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나디아가 원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었다. 방패와 철퇴를 지그시 바라보던 엘레나는 질문한 나디아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저게 뭐죠?”

 

 태어나 처음 본다는 감정을 담은 눈동자가 나디아를 향해 주시하고 있었다. 거짓말 한 점 없는 눈빛이다. 그 눈빛에 엘레나는 상실감마저 느낄 정도였다. 허탈해하는 나디아의 표정을 읽은 크록서스가 나디아의 입에서 질문이 튀어나오기 전에 서둘러 엘레나에게 다시 질문했다.

 

“사제님께서 이 마을에 나타났을 때 가지고 있던 무기입니다. 정말 기억나는 게 없으세요?”

“제가요?”

 

 그러나 엘레나는 크록서스에게 되물으며 무기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자신도 모른다는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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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막 팬픽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