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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아트
검은 사막 팬픽 - 광대편 3
2021.09.1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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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일시 : 2021.09.11 00:31

“이 계획의 배후가 누굴까?”

 

 나지에야는 문뜩 떠오른 생각을 중얼거렸다.

 

“응?”

“내일 하루 더 알아보자.”

“하루 더?”

“응.”

 

 프셰니의 질문에 나지에야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세크레트가 손을 들며 묻는다.

 

“공연은 어쩌고? 쉬어요?”

“쉬어야지. 내일 하루 시간을 더 줄 테니 각자 좀 더 조사해봐. 세크레트 너도.”

“알았어요. 언니.”

 

 이미 지나간 일이라 해도 어쩌면 써먹을 곳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면 지나간 일로 인해 전혀 색다른 무언가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또 도움이 될지 아닐지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한 번 더 확인해보라는 말이다.

 

“오늘은 여러모로 피곤할 텐데. 그만 자자.”

“그래, 그게 좋겠어.”

 

 나지에야의 입에서 피곤이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프셰니가 입이 찢어질 것처럼 하품하며 대답했다. 나지에야의 말과 프셰니의 하품에 남은 이들도 뒤늦은 피곤함을 느꼈다. 오랜 여행으로 쌓인 여독을 풀 시간도 없이 연속으로 네 곡을 부르고,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를 정리하는 회의를 하느라 어느새 시간은 새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피곤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하다.

 동생들과 잘 자라는 인사를 나눈 뒤, 프셰니와 함께 텐트로 들어와 누운 나지에야는 내일 해야 할 일이 무엇일지 생각했다. 내일은 만나봐야 하나? 당장 떠오르는 건, 제단에 머물고 있다는 마녀를 만나는 것이었다.

 

 

 

 하루를 줄 테니 무슨 짓을 해도 좋다. 쓸어올 수 있는 정보는 모조리 쓸어와라.

 그렇게 명령을 내린 나지에야는 마을로 향하는 동생들을 뒤로하고 짙은 파란색의 고깔모자에 로브를 걸치고 어깨엔 가방처럼 커다란 책을 메고는 마지막으로 대충 흉내만 낸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거울에 비춰 이상한 곳에 없는지 확인까지 끝낸 나지에야는 뒤늦게 터벅터벅 동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알레한드로 농장을 지나서 두 어 시간은 걸어야 도착하는 마법사의 제단으로, 그곳에서 마법을 연구하며 정보를 수집하는 마녀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퍽! 퍽! 밭에 긴 고랑을 만드는 남정네들의 괭이질 소리에 맞춰 그 뒤를 따르며 훠이, 훠이. 씨를 뿌리는 아낙네들의 노동요가 울려 퍼진다. 그 소리를 따라 돌담길을 걷다 보면 소똥으로 만든 비료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코를 찌른다. 그 냄새에 오른손을 들어 검지로 코를 막고 코를 찡그렸지만, 이내 다시 손을 내리고는 잠깐 멈춰 섰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좋은 냄새는 아니지만, 크게 불쾌하진 않은 냄새다.

 

“와아!”

 

 활기찬 소리에 마을로 고개를 돌리자 십여 명의 아이들이 장난을 치는 듯, 한데 뭉쳐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살인 벌떼의 습격으로 인해 엉망이 되었단 프셰니의 정보가 틀렸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만큼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잘못된 정보인가? 아니면 이미 해결법을 찾은 것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알아 오겠지. 뭐.”

 

 나지에야는 생각을 접기로 했다. 어차피 프셰니가 알아 올 것이고, 그걸 조합해 하나의 단서가 만들어지면 그 단서를 토대로 작전을 세우면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일이고,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 모습을 보며 걷고 있자니 달그락달그락. 짐을 실은 소달구지가 곁을 스치고 지나간다. 소가 지면을 박차고, 그 힘에 강제로 이끌린 마차의 둥근 바퀴가 지면 위를 굴러가며 생겨난 뿌연 흙먼지가 일어 황토색의 노란 안개가 자욱하게 나지에야의 앞을 덮었다.

 

“콜록! 콜록! 콜록!”

 

 옷 소매로 서둘러 얼굴을 가렸지만, 코와 입으로 밀려드는 흙먼지를 모두 막아낼 순 없었고, 당연히 기침이 튀어나왔다. 고개를 돌담을 향해 돌리고 손으로 얼굴 앞을 연신 부채질하며 흙먼지를 바깥으로 밀어냈다.

 

“어디까지 가시오?”

 

 그러는 사이 뿌연 흙먼지를 일으킨 그 마차가 멈춰 서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곤 들려온 젊은 남자의 목소리에 나지에야는 흙먼지 때문에, 그리고 기침 때문에 촉촉하게 젖은 눈을 돌려 자신에게 말을 건넨 이를 돌아봤다. 밀짚모자를 쓴 채 마부석에 앉아 고삐를 쥐고 있는 한 남자. 태양에 검게 탄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은 그 남성을 보는 순간, 나지에야는 문뜩 떠오른 게 있었다.

 아! 걸어갈 것 없이 타고 가면 되네!

 

“뜻을 기억하는 자다. 마법사의 제단까지 가는 길인데, 태워주게.”

“아, 마법사이셨군요. 물론입니다. 태워드려야죠.”

 

 나지에야는 마부를 향해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은 뒤 양손을 위아래로 둥글게 포개고는 엄지 끝을 서로의 손바닥에 붙였다. 그러자 언뜻 눈동자처럼 보이는 모양이 만들어졌다. 진리를 탐구하여 그 뜻을 기억해 미래에 전달하는 자. 그것이 마법사다. 마법의 소양도 뛰어나야 하지만, 지식을 갈구하는 욕망이 강해 가장 존경받는 마법사는 깨달은 자. 현명한 자. 라 하여 현자라 부르기도 한다.

 마법사가 되는 이는 매년 많지만, 지식과 진리, 그리고 마법을 탐구하고 연구하고 만드는 것만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그들은 한 번 자리 잡은 거주지역을 잘 벗어나지 않기에 이렇게 거리를 떠도는 마법사는 잘 보기 힘든 게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평생을 한 곳에만 머무는 건 아니다. 새로운 지식이나 마법이 발견 혹은 만들어졌다면 그것을 직접 보고, 확인하기 위해 천 리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돌아다니는 마법사를 뜻을 기억하는 자. 라고 칭한다. 타인의 것을 훔쳐 머릿속에 기억한 다음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작성한다고 해서 붙여진 욕설에 가까운 호칭이지만, 사실상 모든 마법사가 그러하니 이제는 오히려 높혀 부르는 존칭어처럼 쓰이고 있었다.

 물론, 나지에야는 그저 흉내를 낸 것일 뿐이지만.

 덜컹! 나지에야가 짐칸에 쌓아둔 나무 위에 걸터앉자 마차가 출발한다. 거짓을 말했지만, 거짓은 아니다. 나지에야는 항상 이렇게 타인을 속이고 나면 자신을 향해 다독인다. 광대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 때로는 왕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거지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세상을 멸망시킬 사악한 용이 되기도 한다. 마법사가 되는 것쯤은 광대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새로운 뜻을 찾으셨는지요?”

“안타깝게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네.”

 

 마부의 질문에 나지에야는 일부러 목소리를 최대한 깔며 대답했다. 깊게 묻지 말라는 것이며, 어느 마법사나 다른 이의 질문엔 비슷하게 답을 한다. 그것은 자신의 지식을 타인에게 뺏기지 않기 위함이다. 그걸 모르고 계속 묻는다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살인자가 되겠지만, 그래봤자 지식을 훔치려 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무죄 판결을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마법사 중에서 왕의 선택을 받아 입궁하여 왕의 측근이 되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왕의 곁에서 왕을 보필하는 대가로 전 대륙의 지식을 왕이 모아주기에 마법사도 오히려 이득이라는 점에서 대대로 많은 왕이 마법사를 측근에 두었고, 마법사는 측근이 되는 걸 자랑스러워했다.

 마법사가 고위직을 꿰차고 앉으며 자연스레 왕족과 귀족과의 결혼이 늘어났고, 그렇게 귀족 중에 마법사의 피가 섞이지 않은 이는 거의 없게 되었고, 그게 귀족 중에 마법사가 많은 이유가 되었다. 이런 역사가 마법사가 저지른 사건 사고를 비교적 관대하게 처벌하는 게 관행처럼 되도록 한 배경이다.

 나지에야의 공갈 협박이 먹혀든 이후, 들리는 소리라곤 마차의 바퀴가 덜컹덜컹 돌자갈을 넘고 튕겨내며 나는 충격에 덜컹거리는 충격과 소리뿐이었다. 때때로 눈치를 살피듯 힐끔힐끔 쳐다보는 마부의 시선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애써 무시한 채 걷는 것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주위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자니 어느새 저 멀리 요새처럼 생긴 높다란 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 왔습니다.”

“고맙네.”

 

 돌다리를 건너기 무섭게 마차가 멈춰서자 나지에야는 짐칸 난간을 붙잡고 풀쩍 뛰어내렸다. 나지에야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마부는 눈치를 살피며 채찍으로 말을 연결한 나무를 두들겨 마차를 몰았다. 덜컹덜컹 멀어지는 마차의 뒤를 피식 웃으며 쳐다보던 나지에야는 흙먼지를 피해 서둘러 제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온통 흙길인 비탈길을 오르자 신발과 바지 밑단이 꽃가루를 뒤집어쓴 것처럼 샛노랗게 변해갔다. 더러워지는 신발을 내려다보다 원망 섞인 눈으로 제단을 올려다보고는 제단의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뜻을 기억하는 자입니다. 뜻을 전하기 위해 왔습니다.”

 

 제단에 도착한 나지에야는 정문을 지키는 두 개의 사자 조각상 앞에 서서 마부에게 했던 것과 같은 손 모양을 하자 앉아 있던 두 사자 조각상이 움직여 배를 깔고 엎드렸다. 그러자 돌로 만든 문이 그르륵! 서로 거칠게 긁히며 열렸다.

 

“어서 오십시오. 어떤 뜻을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돌문 내부로 들어가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마법사들 사이로 한 노인 마법사가 지팡이를 짚고 다가오는 게 보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생일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것만 봐도 문을 열어준 사람이 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지팡이를 짚었지만, 젊은이만큼이나 힘찬 걸음으로 걸어서 다가온 노인은 지팡이를 오른손으로 옮겨 잡고, 왼손으로 가슴까지 내려온 수염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나지에야의 방문을 반겼다. 그러자 나지에야 역시 지팡이를 오른손으로 옮겨 잡고 왼손으로 자신의 모자 끝을 붙잡아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차로브니차를 만나러 왔습니다.”

“차로브니차 말입니까? 기다리시죠.”

 

 언뜻 이름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마녀를 뜻하는 차로브니차는 이곳에서 정보 수집을 하는 첩자의 작전명으로, 노인은 그를 찾아왔다는 나지에야를 향해 실망하는 표정으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멀어졌다. 마법사라는 족속은 다들 이렇다. 타인에게 지식을 캐내는 것만이 중요하다. 그게 되지 않으면 실망한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며 안쓰러운 미소를 지은 나지에야는 네 다리로 바닥을 걸어가는 의자를 붙잡아 털썩 앉았다.

 마차를 타고 오긴 했지만, 여기까지 비탈길을 오르며 힘들었을 다리를 쉬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리에 앉기 무섭게 의자가 나지에야를 뱉어내듯 떠밀어내더니 다시 제 갈 길을 서둘러 갔다. 그러자 관심조차 없이 급하게 다니던 마법사들이 진귀한 구경거리라도 났다는 듯 쳐다보며 쑥덕거렸고, 민망해진 나지에야는 급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벽에 기대어 서선 모자를 깊게 눌러 썼다.

 

“저 사람 마법을 못 쓰는 거야?”

“설마? 마법을 못 쓰면 석상이 가만히 두지 않았을걸?”

“물건을 강제로 짓누르는 조교 마법은 누구나 쓸 수 있잖아?”

 

 같은 말이 들려왔다.

 애써 외면하려 할수록 그런 소리가 점점 더 선명해졌다.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이미 저지른 일을 어찌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수군거리는 마법사들의 말처럼 마법을 쓸 수 있을 리 없다. 마법처럼 보이게 할 흉내를 낼 재주는 있지만, 마법사들이 말하는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사자 석상은 마법을 포함한 어떤 특별한 재주나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는 수문장일 뿐이기에 석상을 속이는 것은 어렵지 않을 뿐이다.

 그걸 모르는 게 신기할 뿐.

 

“뜻을 받들러 왔습니다.”

“뜻을 전하러 왔습니다.”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을 때,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그곳엔 연한 녹색의 긴 생머리 곳곳에 꽃과 리본으로 장식한 황금색 눈동자의 가진 여자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러자 나지에야는 그런 여자를 향해 다시금 지팡이를 오른손으로 옮겨 쥐고 왼손으로 모자의 끝을 붙잡으며 인사했다. 마법사는 왼손으로 마법을 부리고 휘두르고 오른손으로 단검을 쓴다.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향해 인사를 할 때 상대의 지식을 노린 마법사가 칼을 뽑아 들고 위협을 가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마법사들끼리 만나기만 하면 험악한 분위기가 벌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마법사가 길에서 여행 중이던 마법사를 만나게 되었고, 그때, 자신은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보이기 위해 지팡이를 오른손에 쥐고 왼손을 들어 모자를 잡은 게 이제는 마법사들만의 인사법이 되었다.

 

“마법을 못 쓰는 건 아닌가 본 데?”

“그러게.”

 

 의자에 차여 넘어졌던 나지에야가 차로브니차와 인사를 나누자 수군거리던 마법사들이 제 갈 길을 찾아 발길을 돌렸다. 마법사의 옷을 입은 나지에야가 차로브니치와 인사를 나누자 의심을 거둔 것이다. 사실 크게 관심 있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을 뿐이었을 테니까.

 

“제 방으로 오시죠.”

“고맙습니다.”

 

 마법사들이 흩어지자 차로브니차는 날카롭게 치켜뜬 눈으로 나지에야를 쳐다보며 방으로 안내했다. 잔소리 말고 조용히 자신을 따라오라는 말이다. 그런 말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한 나지에야는 입으로는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눈으로 차로브니차의 눈치를 살피며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올해로 61세가 된 세실의 유일한 일과는 집 앞의 카페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다. 언제나 혼자서 카페 밖, 입구 바로 옆에 놓인 탁자가 세실의 전용 좌석으로 언제나 혼자 그곳에 앉아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시간을 보내는 세실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 호기심으로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그들의 행동을 바라보는 게 일과였다. 그래서 하이델에 대해 알고 싶다면 세실을 찾으라는 말이 마치 속담처럼 떠돈다.

 오늘은 그런 소문을 쫓아온 한 노인이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리트라 소개한 그녀는 하이델의 모든 소문을 꿰뚫고 사는 세실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글리시에서 오셨다고?”

“그래요. 죽을 뻔했지. 어휴, 그 진흙 놈들이. 내 집을 부수고 들어올 땐, 정말 어찌 되는 줄 알았다니까.”

 

 그러나 글리시에서 왔다는 리트의 말에는 혹해서 귀를 기울였다. 진흙 괴물이 문지방을 넘어 집 안으로 밀려드는 장면을 묘사할 땐, 하이델이 불타던 그때가 다시 떠오르는 것 같아 세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옛 기억 너머의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 앞서는 건 그 누구보다 새로운 이야깃거리에 목말라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찌 됐어?”

“신에게 빌고 빌었지, 이 늙은 몸뚱이 조금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금세 오랜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둘은 말을 놓았다. 둘 다 사선을 건너왔다는 사실이 공감대를 빠르게 형성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동년배라는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누군가와 친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반가웠을 뿐일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둘은 지금 그 누구보다 친한 사이라는 것이다. 카페를 드나드는 손님들이 아는 사람인가? 누구랑 같이 있는 건 처음 보네?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게 귀에 들려왔지만, 지금 이들 둘에게 다른 이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완전한 둘만의 세계로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어휴, 정말 큰일 날 뻔했네.”

“그렇게 말이야.”

 

 첼니는 그때를 떠올린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는 리트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고, 그러자 이야기를 듣던 세실은 화들짝 놀라며 허둥거리다 탁자 위에 커피잔 옆에 놓여 있던 티슈를 들어 첼니에게 건네주었다. 리트는 고마워. 라는 말을 하며 그 티슈를 받아 눈 밑을 가볍게 문질러 눈물을 닦아냈다.

 

“그때 내 목숨을 구해준 이들은 신이 내게 주신 선물이야. 그분들께는 감사를 전해야 해.”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해.”

 

 세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리트가 세실의 쭈글쭈글한 주름진 손등을 붙잡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세실은 놀란 듯 리트를 쳐다봤지만, 감정을 겨우 가라앉힌 듯 아직도 떨고 있는 리트의 눈가를 마주 본 순간 세실 역시 리트의 주름진 손을 붙잡았다.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는지 아나?”

“아니, 모르네.”

 

 하나라도 더 도움이 되고 싶어진 세실이 리트에게 묻자 첼니는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돌리며 대답했다. 그러나 세실의 눈이 안타까워하며 일그러졌다. 세실의 표정만 봐선 마치 큰일이라도 터진 것 같은 그런 눈이었다. 그러자 리트가 세실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 세실은 마치 결심이 선 사람처럼 손을 뻗어 길 아래쪽을 가리켰다.

 

“저 밑에 훈련장으로 가보게. 그곳의 훈련 교관이 구출 부대를 이끌었단 것 같아.”

“그래, 고맙네. 그래야겠어.”

 

 정말로 고마웠다.

 단서를 하나 열었으니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리트는 세실을 향해 인사를 하고 의자 옆에 세워둔 지팡이를 집어 들더니 왼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오른손으로는 나무로 만든 탁자를 짚고 힘주어 일어났다. 허리가 아픈 듯 끙! 하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자 세실은 자신의 몸도 성한 곳이 없다는 걸 잊은 듯 급하게 두 손을 뻗어 첼니를 받쳐주려 했지만, 세실 역시 나이를 먹으며 이곳저곳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기에 그건 그저 시도에서 그쳐야 했다.

 그러는 사이 완전히 자리에서 일어난 리트는 균형을 잡기 위해 지팡이에 몸을 기댄 채 다리를 비틀비틀 것더니 이내 왼손으로 허리를 짚고 툭툭 두들겼다.

 

“가볼게.”

“그래, 어서 가봐.”

 

 어서 가보라며 손짓하는 세실을 뒤로 하고 몸을 돌리는 리트의 얼굴엔 미소가 지어졌다.

 

==========

 

 마법사에 관한 설정, 마녀에 관한 설정은 모두 순수 100%창작으로 일본 애니를 보다보면 귀족만이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설정이 간혹 보이던데, 거기서 착안하여 확장한 결과물입니다. 차로브니차 역시 폴란드 어로 무당 내지는 마녀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야가도 있긴 한데, 그건 바바야가도 있고, 너무 흔해서 차로브니차로 썼습니다. 뭐, 일단 전 폴란드 어는 전혀 모릅니다. 못 해요. 배운 적도 없고, 쓰고 읽는 것도 모릅니다. 폴란드 어를 선택한 이유는 이름으로 쓸만한 단어를 외래어에서 찾다가 익숙하지 않은 쪽이 좋겠다. 라는 마음에 선택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또한, 중간에 나온 마법에 관한 설정도 넣으면 재밌게 싶어서 넣었을 뿐입니다. 모티브는 마법사의 제자나 미녀와 야수의 그 가재도구를 떠올리면 좋겠죠. 뭐, 실제로 그것들을 생각하고 쓴 글은 아닙니다만, 기존에 있는 걸 두고 설명하는 게 가장 빠르고 편하니까요.

 

 현실에서도 광대는 누구나 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탈을 쓰든, 분장을 하든 누구나 될 수 있죠. 그 점을 등장 인물들은 악용할 생각이며, 악역이 된다 해도 신경 쓰지 않고 진행할 생각입니다. 선을 어디까지 넘을 지는 아직 정하지도, 생각한 것도 없습니다. 무고한 사람을 직접 죽이진 않더라도 몇 개월 전에 썼던 붉은 사막 팬픽의 그 음유시인처럼 이용할 가치가 있다면 끝까지 이용하다 버리는 수준까진 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