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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아트
검은 사막 팬픽 - 벨리아 공방전 3
2021.11.12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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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일시 : 2021.11.12 23:40

 쾅! 그 순간, 성 내부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바다 쪽이다! 바다 쪽에서 전함이 공격을 시작했단 사실을 알아차린 타크로스는 급하게 고개를 돌려 성벽 위를 올려다봤지만, 그걸 기다렸다는 듯 여장 위에서 북소리가 울린다. 계속 싸우라는 것이다. 젠장. 타크로스는 욕지기를 삼키며 다시 달려드는 이들을 노려봤다.

 

“기다려라!”

 

 대기 명령을 내린 타크로스의 눈은 벨모른 연합군의 발이 닿은 지면을 향하고 있었다.

 

“으악!”

“지금이야!”

 

 뒤에서 쉴새 없이 쏟아지는 화살과 불덩이의 든든한 지원을 믿고 성난 파도처럼 밀려들던 그들이 바닥에 놓인 붉은 자갈들을 뛰어넘는 순간, 선봉에서 달리던 자들부터 차례대로 갑자기 쓰러지기 시작했다. 다리가 땅속으로 푹 꺼지며 앞으로 고꾸라진 연합군은 악을 쓰며 절규했고, 그것이 작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라는 듯 타크로스가 전방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외쳤다.

 쾅! 쾅! 쾅! 쾅! 쾅! 선봉에서 달리던 이들이 갑자기 고꾸라진 탓에 뒤를 따르던 이들마저 주춤하는 사이 그들의 머리 위로 벼락이 떨어졌다. 피할 새도 없이 막을 새도 없이 쏟아진 새하얀 섬광이었지만, 단 한 줄기. 번개만이 광신도의 머리를 때렸을 뿐, 남은 네 개의 벼락은 전부 광신도를 피해 바닥에 떨어졌다.

 벼락이 떨어진 뒤에야 놀란 눈으로 그 흔적을 쫓아 바닥을 살폈던 광신도들은 피식! 웃으며 다시 진격 속도를 높이려 손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모두 엎드려!”

 

 타크로스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몸 전체를 가리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방패를 이불 삼아 등을 덮은 뒤 그대로 엎드렸다.

 콰아아아앙!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울리며 땅이 갈라진 것처럼 크게 흔들렸다. 엎드리지 않았다면 엎어져 크게 다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몸을 덮고 있던 무거운 방패가 종이짝처럼 퍼득! 떠올랐다가 다시 몸 위로 떨어졌다. 갑자기 그림자가 사라지며 밝아진 풍경에 고개를 돌렸다가 서둘러 팔을 교차해 들고 머리를 가리고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으윽!”

 

 그러나 쿠웅! 하고 떨어진 방패는 마치 외눈박이 거인의 발이라도 되는 것처럼 몸 전체를 강하게 짓눌렀다. “으악!”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다친 사람이 있는 건가? 죽진 않았겠지? 그러나 타인의 안위를 걱정할 시간을 줄 생각이 없다는 듯 뜨거운 열기를 품은 흙먼지가 훅! 하고 밀어닥쳤다. 그러자 등을 덮고 있던 방패가 화끈! 불판처럼 달아올랐다. 바닥 역시 순식간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앞에 던져두었던 활의 활줄이 타버리는 게 보였다.

 

“으악! 뜨거워!”

“내 팔!”

“아악!”

 

 산발적으로 튀어나오던 비명이 이제는 전체로 번지기 시작한다. 뜨거운 열풍을 맞은 목책 역시 그 열기를 더는 견디지 못하고 타오르기 시작한다.

 

“젠장!”

 

 더는 참을 수 없었던 한섬은 불판처럼 변한 방패를 발로 걷어차고 손으로 밀쳐내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그러나 한없이 무겁기만 한 방패를 붙잡기엔 가열된 철판은 화덕만큼이나 너무나 뜨거웠다. 몸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방패가 오히려 통구이로 만들 화덕이 된 것이다. 투구를 쓴 얼굴이 뜨거워졌다. 입고 있는 갑옷은 말할 것도 없다. 내 몸을 지켜주던 모든 것이 날 죽이려고 덤벼드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죽는 거야? 공포가 엄습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갑자기 뜨거움이 느껴지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있어요!”

 

 매화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방패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그대로 멈춰버렸다. 후욱! 성의 방향에서 찬 바람이 갑자기 불었다. 그와 동시에 방패가 빠르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부수고 나와요! 어서!”

 

 마치 말 잘 듣는 아이처럼 한섬은 얼음처럼 차가워진 칼을 들고 방패를 후려쳤다. 그러자 퍽! 소리를 내며 구멍이 뚫렸고, 그 구멍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그 뒤로 어떻게 나왔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나와서 가장 먼저 본 건 투구를 쓴 자국 그 형태로 화상을 입은 채 숨을 헐떡이는 매화였다.

 

“퇴각하라! 기병도 퇴각하라!”

 

 악다구니 쓰는 타크로스의 명령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유성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폭발한 땅을 뚫고 기세 좋게 하늘 높이 뜨거운 불길이 치솟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불길의 중심은 마치 건더기가 다 녹아내린 냄비 속 토마토 스튜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시뻘건 불길이 닿지 않은 곳에는 검은 그을음이 바닥 이곳저곳에 흩어져 그려져 있는 것도 보였다.

 이게, 무슨 일이야?

 그제야 주위의 풍경도 보였다. 새하얗게 서리가 내린 방패 주위로 보이는 숯덩이와 목책이었던 목탄들이 나뒹구는 그 속에서 무사한. 아니, 살아남은 이는 채 절반도 못 미치는 상황이었다.

 

“한섬 씨.”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를 부르는 건가? 아니, 날 부르는 게 아닌가?

 

“한섬 씨!”

 

 뭐지? 뭔가? 뭐가? 뭐.

 

“한섬 씨!”

“네? 네!”

“퇴각 명령이에요! 뛰어요! 어서!”

 

 얼굴뿐만 아니라 머리 전체가 다 타버려 풍성했던 그 검은 머리 한 올 남지 않은 매화가 손을 잡아당기는 힘에 정신을 차린 한섬은 그제야 익숙한 소리가 몸을 울린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벨리아 성 안에서 울리는 퇴각의 북소리였다.

 

 

 

 작전은 성공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후.”

 

 제 발로 돌아왔지만, 돌아오기 무섭게 쓰러져 실려 간 타크로스가 크게 다쳤으며, 지금은 약으로 재운 상태로 곧바로 수술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막사를 나서는 클리프의 입에서 긴 한숨이 튀어나왔다. 죽진 않겠냐? 라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타크로스만 쳐다보고 있었던 군의관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떻게 된 일이오?”

 

 그 소리에 고개를 들자 따져 물으며 지팡이를 짚은 노인치고는 잰걸음으로 다가오는 이고르 바탈리 촌장이 보였다. 어서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지팡이로 후려치겠다는 의지가 담긴 그 눈빛을 본 순간, 클리프의 입에선 재차 한숨이 튀어나왔다. 성에 피신해 있던 벨리아의 주민들이 웅성거리며 다가온다.

 점점 다가오는 그들의 인기척이 주는 압력을 견디려 어금니를 꽉 깨물다 문뜩, 아직 확인하지 않은 게 떠올랐다.

 

“무사한 이가 몇 명인지 혹시 아십니까?”

“작전에 참여한!”

 

 역정을 내려던 이고르의 입이 갑자기 다물어졌다. 그에 클리프의 고개는 등 뒤, 성벽 위로 향했다.

 둥둥둥둥둥둥둥! 북을 부술 듯 두드리는 그 소리. 그 소리가 들리는 순간, 쾅! 성벽 위로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팔뚝이 살짝 따끔거렸다.

 그러나 너무나 피곤한 손을 들어 그 팔뚝을 긁기엔 너무나 귀찮았다. 곧 괜찮아지겠지. 생각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아! 씨!’

 

 이번엔 다리가 따끔거렸다. 다리는 또 왜? 아! 얼굴! 아! 등이! 아! 악! 악!

 

“으. 윽! 끄응!”

 

 몸 전체로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하는 고통에 눈을 뜨는 순간, 고통을 참으려 힘껏 물은 한섬의 입술 사이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팔을 움직여 몸을 지탱하여 일어나려 했지만, 그 순간, 팔이 어딘가에 묶인 것처럼 쉬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 뒤늦게 팔을 들어 올리자 새하얀 붕대에 칭칭 동여 매여진 자신의 두 팔이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십 수 명의 부상자들이 자신과 같은 몰골을 하고 간이 침상에 누워 있는 게 보였다.

 

“아.”

 

 그제야 한섬은 자신이 화상을 입었으며, 지금 야전 병원에 누워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산 건가? 지옥 같았던 그 풍경을 다시 떠올리며 한섬은 몸서리를 쳤다. 그러자 더 큰 통증이 엄습한다. 그 통증을 억지로 삼키며 주위를 둘러보던 한섬은 진통제를 줄 약사나 연금술사가 없다는 사실에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제야 막사 밖에서 웅성거리며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물러서지 마라!”

“와아!”

“으악!”

“아악!”

 

 함성과 비명이 뒤섞인다. 그 사이마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음악처럼 들린다. 그 소리에 정신이 확 돌아왔다. 통증도 순간 잊히는 것 같았다.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주저앉았다. 발끝으로, 양 손가락 끝으로 몸을 지탱한 채 웅크리고 앉아 주위를 살피던 한섬은 “후!” 짧게 숨을 내뱉었다.

 

“일단 진통제부터 찾자.”

 

 생각의 정리를 끝낸 한섬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기 무섭게 곧바로 연금술사의 책상으로 걸어가 약품을 담아두는 상자부터 찾았다. 약상자로 보이는 소가죽으로 장식된 상자를 책상 밑에서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상자라고 할 게 그것 밖엔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책상 위에 올려놓은 직후 한섬의 입에선 한숨이 튀어나왔다. 그 순간, 밖에선 펑! 하며 불길이 치솟더니 “으악!” 비명이 터졌다.

 목을 잔뜩 웅크린 채 주위를 두리번거린 한섬은 다시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상자를 쳐다봤다. 발레노스의 상징이 새겨진 커다란 자물쇠를 열 열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젠장! 시간도 없는데!”

 

 욕지기를 내뱉으며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던 한섬은 바닥에 떨어진 짱돌 하나를 발견하곤 급하게 집어 들고 이리저리 살피더니 쥐기 좋은 위치를 찾아 꽉 쥐더니 힘껏 내리찍었다. “어우!” 돌이 자물쇠에 부딪히는 순간, 붕대 아래 상처가 모조리 터져버리는 고통이 느껴졌다. 아니, 팔이 찢어진 것 같았다. 붕대 밖으로 피가 배어 나오며 손바닥까지 금세 축축하게 젖어 회색이었던 짱돌은 어느새 붉은색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깨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자물쇠. 뭘, 이렇게 단단한 걸 채워놓은 거야! 어디로 간 건지 안 보이는 연금술사를 향해 욕지기를 날리며 다시 짱돌을 휘둘러 자물쇠를 두들겼다. 손이 먼저 터질지, 아니면 자물쇠가 먼저 부서질지, 오기로 짱돌을 휘둘렀다.

 퍽! 그러길 몇 번. 그동안 거친 저항을 받은 것처럼 튕기던 짱돌이 상자를 치는 순간, 허망하게 푹!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무엇인지 눈으로 확인하기도 전에 툭! 소리와 함께 부서진 자물쇠가 책상 위로 떨어졌다.

 

“찾았다.”

 

 짱돌을 내던지며 서둘러 상자를 열어젖힌 한섬은 그 안에서 짙은 녹색 물이 찰랑이는 작은 유리병 두 개를 꺼내 들더니 상자를 버려둔 채 침상으로 뛰어가 한 명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붕대로 얼굴 전체를 감싼 환자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들 중에서 꼭 찾아야 할 사람. 매화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낭자! 낭자! 괜찮으십니까?”

“한섬 씨? 큭! 으.”

“진통제요. 어서 마시세요.”

“괜찮은. 으.”

“적입니다. 성이 함락당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한섬의 말을 들은 순간, 매화의 눈이 번쩍 뜨이더니 한섬이 내민 진통제를 빼앗듯 낚아채더니 그대로 벌컥! 벌컥! 마셨다.

 

“가죠.”

 

 진통의 효과가 아직 돌지도 않았을 텐데도 다 마시자마자 침대에서 내려오는 매화를 향해 한섬이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낭자!”

 

 막사 밖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다행히 내성까진 함락되진 않은 듯 보였지만, 부서진 외성 문을 넘어 밀려 들어오는 연합군에 맞서 결사의 항전을 벌이는 그 모습은 처절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불에 휩싸인 채 바닥을 뒹구는 병사도, 얼굴에 화살이 박힌 채 비명을 지르는 병사도, 팔 또는 다리를 잃었음에도 악을 쓰며 광신도와 고블린을 향해 달려드는 병사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의 틈 속으로 달려가며 한섬은 바닥에 떨어진 피 묻은 주인 잃은 장검을 집어 든 뒤 매화를 향해 던졌다. 그러자 손을 뻗으며 달려와 그 칼을 잡는 것과 동시에 성안으로 난입한 연합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는 사이 바닥을 다시 둘러본 한섬은 땅에 떨어진 창을 집어 들었다. 날 끝이 깨진 창이었지만, 당장이 아쉽다.

 

“죽어!”

 

 창을 줍기 무섭게 목책 뒤에서 화살을 쏘며 저항하는 병사를 노리고 칼을 휘두르며 목책을 뛰어넘어오는 고블린을 향해 창을 힘껏 내질렀다. 예상하지 못한 반격. 죽음을 직감했던 병사와 고블린의 표정이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날이 깨진 창이라지만 고블린 자신의 무게까지 더해진 공격에 허접한 갑옷을 순식간에 뚫어버린 창은 그대로 고블린의 가슴에 박혀 들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른다. 너도 괴롭지? 이 자식아! 욕지기를 떠올리며 창을 그대로 바닥으로 힘껏 찍었다. 뚜둑! 무언가 단단한 것이 부러지는 느낌이 창 자루를 타고 올라 뇌리에 박힌다. 그것이 척추라는 걸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빌리겠소.”

 

 창을 버린 한섬은 궁수 옆에 전사한 병사가 손에 꽉 쥐고 있던 칼을 빼앗았다. 그러자 궁수는 그저 놀란 눈으로 한섬을 바라볼 뿐이다. 그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무작정 목책을 뛰어넘었다. 계획은 없다. 생각도 없다. 몸을 보호할 갑옷도 입지 못했지만, 지금 당장 떠오른 생각은 하나뿐이다. 다 꺼져!

 목책을 뛰어넘기 무섭게 광신도가 긴 칼을 힘껏 내리친다. 손을 머리 위로 올려 칼을 빗겨 드는 것으로 그 칼을 흘려냈다. 스르르릉! 칼날과 칼날이 스치며 불꽃이 일었다. 그 광신도의 칼이 짓누르는 힘이 칼끝을 타고 흘러나가는 순간, 한섬은 재빨리 칼을 돌려 머리 위에서 아래로 힘껏 그어 내렸다.

 불쾌하기 그지없는 뜨겁고 끈적한 피가 튄다. 그러나 그런 것을 생각할 정신은 없었다. 왼쪽 무릎을 꿇고 앉아 팽이처럼 몸을 돌렸다. 손에 쥐고 있었기에 몸과 함께 회전한 칼날이 톱날처럼 단검을 들고 달려들던 광신도의 허리를 베었다. 허리를 베인 광신도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칼자루를 역수로 쥐고 그 광신도의 목을 힘껏 찍었다. 뚜둑! 목이 부러지는 촉감이 손끝에 새겨진다. 그대로 작두처럼 칼을 아래로 그어 목을 잘라낸 한섬은 광신도의 투구 쓴 머리를 집어 든 뒤 양 대가리 망치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고블린을 향해 힘껏 집어 던졌다.

 움찔! 갑자기 날아온 머리에 놀라 행동을 멈추는 순간, 칼끝으로 고블린의 발등을 힘껏 찍었다. “끄에엑!” 날카로운 비명이 귀를 시끄럽게 어지럽힌다.

 

“닥쳐!”

 

 얼굴을 잔뜩 찡그린 한섬은 욕지기를 내뱉으며 팔을 힘껏 위로 쳐올려 칼자루의 끝. 둥근 폼멜로 고블린의 목뿔뼈를 강하게 후려쳤다. 켁! 숨이 막힌 듯 고블린이 목을 감싸고 그대로 무릎을 꿇어버린다. 더는 비명도 못 지르는 그 고블린 앞에 선 한섬은 “후!” 숨을 거칠게 내뱉은 뒤, 칼을 수직으로 세워 고블린의 두개골을 향해 힘껏 쑤셔 넣었다.

 끄엑!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고블린의 눈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꺾이며 그대로 쓰러진다. 발을 들어 고블린의 머리를 짓누르며 칼을 뽑아 들었다. 뇌수가 뒤섞인 피가 푹! 하고 튀어나온다.

 쾅! 숨이 끊어진 고블린이 쓰러진 순간, 전혀 다른 곳에서 들려온 큰 소리에 한섬은 그 소리를 쫓아 고개를 들었다. 그때, 누군가의 비명이 튀어나왔다.

 

“도망쳐!”

 

 쾅! 흙이 잔뜩 묻은 거대한 바위가 성문 안에 떨어지더니 비탈길을 거슬러 굴러들어오고 있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전쟁터의 중간에 공간이 생겼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순간, 성문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무언가 거대한 그림자가 보였다. 고블린이라기보단 거인에 가까운 커다란 키에 그에 걸맞은 커다란 칼을 쥔 채 승자의 여유로움까지 느껴지는 느긋한 걸음으로 들어오고 있는 그것은 바로 거대한 나무와 바위를 던져댔던 기아스였다.

 

“젠장.”

 

 한섬의 입에서 처음으로 절망이 섞인 탄식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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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아 공방전은 본래 3편 분량이었는데, 쓰다 보니 한 편이 더 늘어나 다음 편에 끝이 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