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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아트
검은 사막 팬픽 - 메디아 공방전 5
2021.12.22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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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일시 : 2021.12.22 19:52

 쿵! 쿵! 쿵! 쿵!

 굳게 닫힌 문에 모인 병사들의 매서운 도끼질이 이어졌다. 두꺼운 문을 부수기 위해 사정없이 두들기는 그 소리는 마치 아귀의 절규처럼 들리는 듯했다. 문을 부수는 동안 남은 병사들은 전사한 병사들의 시체가 다시 해골이 되어 일어나는 걸 파괴해야 했다. 동료였던, 친구였던 이들을 한 번 더 죽여야 하는 상황에 정신이 흔들릴 법도 하지만, 병사들은 명령에 따라 그들을 다시 죽였다. 아니, 아마도 이미 제정신인 자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제정신인 자는 없다. 제정신으로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자는 단 한 명도 없을 테니까.

 

“우리가 부수겠소.”

 

 지체되는 게 싫다는 듯 성문을 열고 돌아온 두 거인족이 도끼를 들고 대전의 문 앞에 섰다.

 

“이얏!”

“하앗!”

 

 쾅! 강하게 내려치는 세 자루의 도끼에 얻어맞은 대전의 문이 크게 흔들렸다. 뚜드득! 깊게 박힌 도끼를 뽑아내자 나무가 쪼개지며 후드득! 조각이 떨어진다. 그러자 세로로 길게 쪼개진 틈으로 내부의 불빛이 밖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도끼를 들어 올리자 푹! 그 순간, 불빛을 꿰뚫으며 날카로운 창이 문밖으로 튀어나왔다.

 도끼질을 위해 한발 물러났던 가디언은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스쳤고, 좀 더 가깝게 붙었던 자이언트는 그렇질 못했지만, 무엇이든 뚫어버릴 것 같던 창보다 그가 입은 갑옷이 단단했다. 까가강! 소리를 내며 갑옷 옆으로 미끄러져 흘러나간다. 자이언트는 도끼를 던지며 그 창을 붙잡았다.

 

“공격이다!”

“방패를 세워라!”

 

 뒤에서 소동이 일어난다.

 그 소리를 들으며 가디언은 문 너머로 돌아가는 창의 방향을 확인한 뒤 힘껏 도끼를 휘둘렀다. 퍼걱! 쿵! 경칩이 으스러지며 왼쪽 문이 부서졌다. 그 순간, 주저앉는 문 너머에서 생명이 끊어지는 비명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 불쾌한 소리에 집중할 시간은 없었다. 서둘러 왼팔의 방패를 들어 몸을 가리자 화살과 총알이 날아든다.

 

“꺼져!”

 

 쾅! 자이언트가 맡았던 오른쪽 문도 털가죽을 잡은 사냥꾼의 억센 손아귀처럼 경칩과 함께 벽을 뜯어내며 대전 안으로 날아간다. 근 1m 정도 날아간 문이 쿵! 거친 소리를 내며 대전의 바닥에 떨어졌을 땐, 문 너머에서 쉬지 않고 들려오던 비명도 사라진 뒤였다.

 

“문이 열렸다!”

“돌격하라!”

“쳐라!”

“죽여!”

 

 가디언은 커다란 도끼를 힘차게 휘두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고, 어디서 시작된 건지도 모를 붉은 불길에 휩싸인 자이언트는 도약하여 넘치는 딸기잼을 품은 식빵 같은 문 위에 떨어지며 두 개의 도끼를 힘껏 내리찍었다. 퍽! 퍽! 쾅! 둔탁하고 거친 소리가 대전을 울리자 그에 화답하듯 비명이 연주를 시작한다.

 가루가 되어 연기처럼 흩어지는 검은 연기는 그들의 뒤에서 자취를 기록하는 잉크처럼 대전 안을 장식한다. 찬가다. 업적을 기리는 음유시인이 부르는 아름다운 구절이다.

 그들의 돌격 뒤로 병사들이 따른다. 노바와 세이지도 함께 한다.

 

“너의 계획. 지금도 믿을 만한가?”

 

 머리 위에 만들어진 대여섯 개의 칼날이 적을 꿰뚫기 무섭게 미끄러지듯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며 검붉은 기운을 뿜어내는 칼을 내지른다. 펑펑펑! 검은 연기가 노바의 잔상을 휘감고 돌며 흩어진다. 그러며 노바는 세이지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듯 묻는다.

 

“키벨리우스는 저놈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무기야.”

“알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놈을 꼭 죽여라.”

 

 노바는 얼굴 앞으로 날아드는 칼을 후려치듯 밀어내면서 내질러 벨모른 병사의 배를 꿰뚫었다. 흩어지는 검은 연기 너머로 보이는 대전의 가장 안쪽. 새하얀 돌로 만든 의자에 거만한 자세로 걸터앉아 연회가 한창인 대전을 내려다보는 검은 연기 덩어리를 노려봤다.

 

 

 

 파도가 친다.

 바닷가이기에 파도가 치는 게 이상할 건 없지만, 파도가 닿을 수 없는 높다란 섬 위에 그보다 더 높게 세워진 성벽에 둘러싸인 성이라는 문제를 누군가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 불의 거인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불의 거인은 급하게 물을 피했지만, 의지를 가진 듯 불의 거인을 쫓은 파도는 결국 그의 왼팔을 후려치며 지나갔다.

 파도에 맞은 왼팔이 펑! 폭발하더니 검게 변하며 굳어졌다.

 

“왼팔을 노리고 쏴!”

 

 뜨거운 열기를 희뿌연 수증기로 뿜어내며 바닥에 철푸덕! 떨어진 파도 속에서 푸른 머리의 커세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칼을 휘두르며 명령을 내리기 무섭게 펑! 대포가 뒤로 힘껏 떠밀리며 붉은 불꽃을 품은 검은 연기를 뿜는다. 그러자 거세게 몰아친 파도에 맞아 굳어버린 페리드의 왼팔이 쩌쩍! 갈라지더니 부러져 쿵! 바닥에 떨어지더니 붉은 용암이 피처럼 뚝뚝! 떨어진다.

 

“오른쪽으로 10보 이동!”

“우 10보!”

 

 화가 치민 듯 페리드가 불타는 팔을 크게 휘두른다. 그러자 커세어의 명령대로 열 걸음 우측으로 이동한 부하들의 좌우로 불길이 치솟으며 흘러나간다.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식은땀이 흐른다. 그러며 커세어를 향한 충성심이 치솟는다. 불과 몇 초 전, 포를 쐈던 그곳이 불에 타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

 

“장전을 서둘러!”

 

 명령을 내린 커세어의 모습이 다시 사라지더니 이번에도 파도가 페리드를 향해 들이친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기세 좋게 페리드를 향해 달려들던 파도는 갑자기 몰아친 강한 저항에 부딪히며 크게 흔들렸다. 갑작스러운 저항에 당황한 파도가더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다리가 달린 둥근 용암 덩어리 페리드 탈리 무리가 파도에 부딪혀 폭발한 것이다.

 

“대장!”

“젠장!”

 

 팝콘이 터지는 것 같다. 아니 피를 잔뜩 머금은 모기를 터트린 것 같기도 하다. 붉은 용암이 터지며 검게 변하는 그것은 그나마 살아남은 부하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칼을 휘두르며 싸우려 하지만 몸을 부르르 떨며 곧 폭발하려는 그것들 앞에서 부하들은 너무나 무력하게 보였다. 겁먹은 부하들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쾅! 그러나 부하들에게 달려가기도 전에 커세어는 욕지기부터 내뱉어야 했다. 페리드 탈리 무리가 커세어를 향해서도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대포를 버리고 도망쳐! 내성으로 들어갈 길을 찾아!”

“대장!”

“내 걱정은 마! 어서 피해!”

 

 달려간다.

 명령이 떨어지자 머뭇거리던 부하들이 도망치기 시작했고, 그 직후 대포가 폭발했다. 대포에 엉겨 붙은 페리드 탈리가 자폭한 탓이다. 큰 반원을 그리며 검은 연기가 분출하자 달려들던 페리드 탈리 무리가 그 폭발에 휘말려 대포를 지나 부하들을 쫓아가던 것들도 모두 그 자리에서 폭죽이 되었다.

 촤아악! 그 모습을 지켜보던 커세어의 몸을 물이 소용돌이치며 감싸 안는다. 펑! 펑! 펑! 펑! 격한 폭발이 몸 여기저기를 사정없이 두들겨대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고 있음에도 깨닫기 힘들 만큼 인정사정없는 매질이 가해진다. 두 다리와 팔은 물론이고, 배와 등. 그리고 머리도 그 매질의 대상이 된다.

 젠장!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페리드의 커다란 팔이 머리를 향해 빠르게 내려오는 모습에 할 수 있는 건 욕을 삼키는 것뿐이었다.

 

 

 

 어떤 농부가 말하길 한낮의 더위를 피해 나무에 기대어 잠시 잠을 청했을 때, 하늘을 날아가는 거대한 용 그림자를 보고 놀랐다고 했다. 또 어떤 광부가 말하길 머리를 다쳐 간이침대에 실려 갈 때 하늘을 날아가는 커다란 용을 봤다고도 했다. 그것을 음유시인이 노래로 부르면서 하늘을 나는 거대한 용의 전설은 한층 더 피와 살을 붙여 그 몸집을 키워갔다. 누군가는 성에 비유했고, 누군가는 함선에 비교했다.

 그 크기는 제각각이었지만, 한가지는 공통적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형태의 용이었다는 점이다. 그저 앞뒤로 길쭉하기만 할 뿐, 날개도, 꼬리도, 머리도, 그 무엇도 용이라 부를 수 없는 그것.

 

-하강한다! 전 승무원은 하강에 대비하라!

 

 구리관을 타고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는 나팔수가 부는 진격의 나팔소리였다. 유리를 붙여 앞을 볼 수 있게 하고, 코와 입에는 가죽으로 만든 긴 관을 연결한 붉은색 가죽 가면을 쓴 조타수가 왼손으로 장대를 잡아 앞으로 떠밀더니 타륜을 왼쪽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잘 맞물린 톱니바퀴 같은 조타수의 행동은 곧 하강이라는 결과로 드러났다.

 커다란 파도를 만난 것처럼 선수가 아래로 급하게 꺾이며 그대로 침몰하듯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몸을 숨기고 있던 새하얀 구름을 뚫었다. 그러자 지상이 보인다. 바다가 보인다. 그리고 치솟는 불길이 보인다.

 

-우측으로 선회하며 불의 괴물을 먼저 쓰러뜨린다!

“우측 포문 개방!”

-포문 개방!

 

 다시 떨어진 선장의 명령에 일등항해사가 구리관을 통해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드드득! 굳게 닫혀있던 우측 포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소리이며 동시에 새로운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사정권에 들어오는 포문부터 차례대로 발사하라.

 

 그 소리를 감상하듯 눈을 감았던 선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하게 생긴 물건이었다.

 둥글게 뭉친 물의 덩어리는 마치 유리 속에 담긴 것처럼 그 안에서만 일렁일 뿐 밖으로 쏟아지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기이한, 절대로 정상적일 수 없는 그것은 커세어를 노리고 손을 휘두르던 페리드도 놀란 눈을 크게 뜨고 그저 쳐다봐야 할 만큼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커세어도 페리드도 잘 알 수 있었다. 커세어가 칼을 들어 올리며 몸을 웅크리는 사이 페리드가 그 물의 덩어리를 향해 입을 크게 벌리고 불을 뿜어내는 것만 봐도 모른다는 말은 절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페리드의 불이 그 덩어리에 닿는 순간, 예상했던 결과가 벌어졌다.

 펑! 물이 페리드를 덮쳤다. 아니, 쏟아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뜨거운 열기가 폭발했다. 펑! 펑! 펑!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강하게 밀어치는 물의 힘에 얻어맞은 페리드의 식어버린 몸이 주저앉으며 무너지는 순간, 물 덩어리가 연이어 페리드의 몸을 덮쳤다.

 한 번의 폭발이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물이 터지고 페리드의 몸이 터지고, 용암이 쏟아졌다. 그러자 발밑에 있던 커세어는 페리드가 쏟아내는 용암과 식은 화산탄을 피해 도망쳐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페리드가 더는 페리드 탈리 무리를 불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헉! 헉! 헉! 헉!”

 

 젠장.

 도망치기 급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뜨거운 수증기 때문인지 그리 얼마 달리지 않았음에도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쉼 없이 폭발하며 화산탄과 화산재를 날려대는 페리드의 밑에선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화단을 부수며 처박힌 화산탄에서 떨어져나온 불똥이 발밑에 떨어지자 그게 신호라는 듯 커세어는 다시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웅! 웅! 웅! 웅!

 바람을 밀어내는 것 같은 소리다. 때때로 바람에 떠밀리는 것 같기도 하다. 거대한 돌풍이 이는 소리에 건물 안으로 몸을 숨겼던 커세어는 소리를 쫓아 창문틀 아래로 두 눈만 살짝 들어 그것을 확인했다. 성을 향해 빠르게 하강하는 거대한 용이 보였다. 날개가 없고, 머리와 꼬리가 없는 그 기이한 용이다. 허리춤의 망원경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망원경을 꺼내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 손이 크게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야 깨달았다.

 망원경을 고정한 가죽 주머니는 한 손으로도 풀 수 있도록 작은 단추를 달아놓았을 뿐이다. 평소에는 너무나 쉽게 검지와 엄지만으로도 그것을 따는 데 어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지만, 지금처럼 떨리는 손은 마치 물먹은 종이처럼 힘이 없었다. 결국, 쥐고 있던 칼을 내려놓고 작은 단추를 벗겨내는 데 손을 더하기로 했다.

 그러나 손을 펴기도 쉽지 않았다. 마치 붙어버린 듯 칼을 내려놓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그 용은 더욱 가까워진다. 그리고 이젠 망원경에 의지하지 않아도 저것이 무엇인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전함이었다. 차이점이라면 돛이 아닌 커다란 둥근 고래를 묶어놓은 것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젠장.”

 

 쾅! 쾅! 폭발이 이어진다. 그 소리에 목을 움츠리는 사이 쿵! 지붕을 뚫고 무언가 떨어졌다. 붉은 용암을 흘리는 그것. 그것은 구불거리는 길쭉한 무언가였다. 어디서 본듯한 그것이 페리드의 머리의 일부분이라는 걸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는 모른다.

 저게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위협적이라는 것이다. 불의 거인을 단숨에 제거할 정도의 힘을 가진 무언가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괜찮나요?”

 

 그때 누군가 그 머리에 발을 올리며 섰다. 그에 고개를 들자 그곳엔 짙은 금실로 달과 별을 새긴 짙은 파란색 로브를 걸친 여자가 두 개의 구슬을 몸 주위에 띄운 채로 웃으며 서 있는 게 보였다.

 

 

 

 검은 파도가 덮쳐든 건, 노바가 마지막 벨모른의 병사를 쓰러뜨렸을 때의 일이다.

 앉아있던 벨모른의 몸에서 뿜어진 검은 파도에 가장 먼저 휘말린 건 두 거인족이었다. 벨모른의 머리를 치기 위해 달려들었던 두 거인족은 도끼날을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그 순간 난입한 건 노바였다. 빠르게 칼을 휘두르며 달려든 노바였지만, 그녀 역시 벨모른을 향해 날아가는 칼을 끝까지 바라보지 못했다.

 

“어이쿠.”

 

 나동그라지는 노바를 받아 안아주는 손이 있었다. 노바가 다치지 않도록 황급히 안아 든 건 세이지였다.

 

“부상자들을 밖으로 내보내게!”

“당신 혼자 해결할 수 있겠나?”

 

 가닌 아스의 질문에 세이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어 보였다. 그 웃음에서 의미를 충분히 알 것 같단 생각이 든 사르마 아닌은 서둘러 뒤를 돌아보며 병사들을 향해 퇴각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세이지는 벨모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세이지를 향해서 검은 연기를 뚫고 무언가가 날아든다. 벨모른 병사가 휘두른 창이었다.

 깡! 그러나 그 창은 세이지의 가슴에 닿지 못했다. 닿기도 전에 황금색의 방어 마법에 가로막힌 것이다. 푹! 방어 마법 속에서 튀어나온 작은 사각형이 그 병사의 몸을 꿰뚫었다. 검은 연기가 되어 흩어지는 모습을 곁눈질로 확인한 세이지는 이내 오른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왼쪽에서 칼을 쥐고 달려들던 벨모른 병사의 머리가 꿰뚫렸다.

 퓽! 슝슝! 검은 연기를 뚫고 화살과 총알이 앞에서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세이지의 앞을 가로막으며 좌우로 길게 마법이 펼쳐지더니 퍼퍼펑! 검은 연기가 찢어지며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금세 검은 연기가 공간을 채우며 그 속에서 더 많은 적이 밀려든다. 위협적임에도 멈추지 않고 거침없이 벨모른을 향해 걸어가는 세이지의 등 뒤로 정사각형의 마법이 떠오르더니 그대로 광선을 마구 쏘아대기 시작했다.

 퓽퓽퓽! 검은 연기를 뚫어 구멍을 만들자 그 속에서 뛰어나오던 적들도 모두 연기가 되어 흩어져간다. 그 속으로 팔을 가슴 앞으로 교차해 든 세이지가 난입하듯 뛰어들었다. 금빛을 흩날리며 돌진하자 검은 연기가 찢어져 흩어지며 비명이 들린다. 그것은 이 대전에서 가장 짙은 어둠을 뿌리는 곳. 옥좌에 다다른 뒤에야 멈추었지만, 단 한 줄기 빛 만은 벨모른의 코끝에 닿았다.

 

“드디어 만났군.”

 

 벨모른의 코끝에서 창을 멈춘 세이지는 씩 웃고 있었다. 언제든 죽일 수 있지만, 이토록 허무하게 죽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모든 것이 교차한다. 이것을 죽일 방법을 찾지 못해 스스로 봉인되어야 했던 그때부터 깨어난 뒤 흑정령의 유혹에 빠져 벨모른의 부활을 저지하긴커녕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만들었던 시간. 그 속에서 너무나 많은 희생을 겪었다. 함께 벨모른을 막자고 약속했던 친구도 지금 죽어가는 상황이다.

 루비처럼 붉은빛을 내는 벨모른의 눈동자를 노려보며 멈춘 창을 찔러넣는 순간, 펑! 폭발했다.

 

“큭!”

 

 급하게 몸 주위에 마력을 두르고 창으로 막았지만, 커다란 돌덩이에 얻어맞은 것처럼 몸 전체를 강하게 두들기는 힘에 세이지는 계단 뒤로 떨어지며 굴렀다. 그러자 계단에 여기저기 부딪히는 통증이 몸을 감쌌다. 그러나 아프다고 말할 시간은 없었다. 몸을 덮쳐드는 검은 연기를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몸을 돌려 일어나며 창을 크게 휘둘러 주위를 포위하는 검은 연기를 쫓아내는 것과 동시에 누워있던 곳에 검은 연기가 쿵! 내려 찍혔다. 자세를 고치는 것과 동시에 그 덩어리를 향해 창을 힘껏 휘둘러 베었다. 끼에에엑! 그 순간, 귀를 찢어버릴 듯 날카로운 비명이 울렸다.

 그 소리에 귀를 틀어막았지만, 뇌를 직접 뒤흔드는 것처럼 밀려드는 그 소리는 더욱 선명해졌다. 기세 좋게 덤벼들던 세이지가 멈추자 기회가 왔다는 생각을 한 듯 검은 연기가 다시 짙어지며 그 속에서 병사들이 튀어나왔고, 그들의 창과 칼, 철퇴가 세이지의 머리를 등을, 옆구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급하게 손을 떼고 창을 휘둘렀지만, 후려친 건 고작 세 개뿐. 남은 것들은 그대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이지의 몸을 덮쳐들었다.

 

==========

 

어차피 다음화에서 누군지 나올 테고, 묘사만으로도 누군지 예상할 수 있으니 써보자면 금자수가 놓인 파란색 옷을 입은 여자는 위치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나타난 건 당연히 비공정입니다. 현 시점에선 발렌시아의 비밀병기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발렌시아와 마르니의 합작품 같은 개념이죠.

둘이 동시에 등장한 이유는 광대편에서 썼던 부분이긴 한데, 위치는 발렌시아 측 인물로 설정해서 쓰기 때문입니다.

 

별 의미 없는 설정 소개를 하자면 위치는 처음부터 발렌시아가 사막을 건너 서쪽으로 진격할 때를 대비해 정보 수집을 위해 파견한 첩자라는 설정을 세웠었습니다.

 

뒤늦게 등장한 이유는 발렌시아는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연합군이 성문을 뚫고 벨모른과 전투를 치르기 전까지 적극적으로 대응할 생각이 없었단 설정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에필로그에서 쓸 생각입니다.

 

위치가 배신자처럼 표현될 예정이지만,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정의를 관철하는 모습이라 생각하며 쓸 생각입니다.

 

이번 화로 끝내려 했는데, 벨모른과의 전투를 좀 더 격렬하게 쓰고 싶단 생각에 다음화까지 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