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대체 누가 이런 숲속에 아이를..."

싱그러운 숲의 바람이 곱게 잠든 아이의 머릿결을 흔들었다.

플로린 마을 주민 발렌타인의 눈에 맺힌 아이는 갓 태어난 다람쥐처럼 작았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숲은 고요하기만 했다.

발렌타인은 조심스럽게 포에 곱게 싸여 누워있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의 수염에 닿은 조그마한 손 그리고 이슬같이 고운 눈망울.

그는 아이를 데려가 친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웠다.  

'그 아이를 처음 본 순간 새벽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그러한 애정에 보답하듯, 아이는 지나치게 건강한 모습으로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왕성한 호기심으로 하피의 알을 훔치다 쫓기기도 하고,

약초탕기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다 약초탕기를 망가뜨리기도 했으며

발렌타인의 당나귀를 훔쳐 타다 진흙탕에 거꾸로 처박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영리함은 플로린의 샤이들 중에서도 특히 빛났으며,

남들은 잘 하지 못하는 연금술로 여러 가지를 만들어 주변을 놀라게 했다.

마을 사람들은 비록 사고뭉치지만, 쾌활하고 밝은 그 아이를 아꼈다.

 “성인이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단다.”

시간은 흐르는 강물보다 더 빠르게 흘러갔다.

샤이족의 나이로 일곱 살, 인간의 나이로 열 다섯 살이 되던 해

그녀는 샤이족 전통에 따라 첫 번째 성인식을 치르게 된다.

희귀한 약초를 이용해 자신만의 연금술을 선보여야 했던 그녀는

머리에 하얀 잎사귀가 돋는 아주 특별한 약초쿠키를 만들기로 했다.

'이 약초도 아니야. 이것도...어? 여기는...'

희귀한 약초를 찾기위해 우거진 숲으로 들어간 그녀의

눈 앞에 우뚝 자리한 건 금지된 동굴이었다.

'저기는... 발렌타인 할아버지가 절대 가지 말라고 한 곳인데...'

까치발로 동굴 안을 살펴본 그녀의 눈에 들어온 희미한 불빛.

그녀의 발걸음은 홀린 듯 빛을 향해 동굴 끝으로 다가갔다.

마침내 마주한...오래전 누군가 지낸 듯한 작은 실험실.

"와... 이것들은 다 뭘까? 처음 보는 물건들이 가득해!"

꿈꾸던 세상을 마주한 듯, 그녀의 큰 눈망울은 기쁨으로 흔들렸다.

작디작은 손은 분주하게 먼지 쌓인 이곳저곳을 만져보다가

"쨍그랑..."

덤벙거리다 깨뜨린 유리병에서 나온 검은 안개가 뱀처럼 그녀를 휘감았다.

당황하며 어찌할 줄 모르는 그녀 앞에 끔찍한 풍경이 피어 올랐다.

화염에 휩싸인 플로린 마을.

피투성이가 되어 여기저기 쓰러진 주민들.

그리고 그 가운데 애처롭게 울부짖고 있는 자신.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쳤지만

가위에 눌린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샤이... 태초의 빛이여..."

따스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그녀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보는 빛깔로 반짝이는 구슬이 먼지 쌓인 바닥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안간힘을 다해 움직여 구슬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타들어 가는 장작 소리가 소나기처럼 귓가를 스치며

검은 안개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작은 세상을 담은 빛나는 구슬.

몽환적인 빛을 담은 구슬에 눈을 떼지 못한 채 한참 지켜보던 그녀는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구슬을 뒤로한 채 황급히 동굴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영원히 깨지 않을 악몽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동굴에서 본 환상은 그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가 잠을 잘 때도, 꿀통을 따고 약초를 채집할 때도...

항상 웃음을 머금었던 얼굴은 수척해지며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마을 주민들은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했으나,

금지된 동굴에서 본 환상에 대해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사람들을 피해 아무도 쓰지 않는 공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홀로 조용히, 작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간은 흐르는 강물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밤송이만한 눈꽃이 열 다섯번 또 떨어지며 그녀는 두 번째 성인식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보물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가장 진귀한 보물이라고?'

금지된 동굴에서 쥐었던 빛나는 구슬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그녀의 입에서 두려움이 섞인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지만

'이제는 마주할 수 있어.'

그녀는 공방의 문을 잠그며 다짐했다.

플로랑을 쥐고 나온 그녀의 손에 힘이 꾹 들어갔다.

플로랑을 앞세우고 다시 금지된 동굴에 발을 디뎠다.

고요한 동굴을 직접 확인하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 순간

또다시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악몽의 환상이 펼쳐졌다.

"안돼, 당신만이라도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

이름 모를 두 샤이가 쫓기는 모습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기운이 퍼져 나와 그녀에게 매섭게 달려드는 순간

또다시 먼지 쌓인 구석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 나왔다.

필사적으로 빛의 구슬을 강하게 움켜쥔 그녀는

이내 그 빛 속에서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으으... 응? 여긴 어디지? 어지럽고... 배도 고프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지저귀며 노래하는 새,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 푸른 하늘에 떠 있는 하얀 솜.

눈에 비치고 귓가에 울리고 피부로 느껴지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두 번이나 그녀를 덮친 검은 기운이 모든 기억을 앗아가 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의 귓가에 문득 아름다운 노래가 들려왔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의 눈에 자신의 허리춤의 구슬이 눈에 들어왔다.

구슬 속 작은 세상이 아름답게 빛나며 노래하고 있었다.

왠지 모를 봄빛 행복한 기운이 포근하게 감싸왔다.

그녀는 하늘을 쳐다보고 깊게 숨을 들이 마신 다음 내뱉었다.

깃털 같은 발걸음으로 자신의 새로운 운명을 향해 첫 발자국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