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별이 우리 모두를 낙원으로 인도하리라.
그때까지 우리는 이곳에서 어둠을 경계하노니,
이는 삶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흩날리는 붉은 잿더미와 함께 그와 동료들의 평생을 지배해온 구절이었다.
그러나 머나먼 서쪽 끝 땅에 검은별이 떨어진 지도 벌써 3년.
늙은 선생들이 그토록 부르짖었던 낙원은 어디에도 여전히 오지 않았다.
저 시커먼 구덩이에서 끝없이 기어 나오는 괴물들은 여전히 그의 현실을 옥죄고 있을 뿐이다.
"들어라. 나는 아알을 대리하는 굽은 칼날이니,
모래와 바람은 권세를 받들어 휘몰아쳐올지어다.”
그만이 혼돈을 베어낼 수 있기에
처절한 훈련과 동지의 시체가 가득한 전장을 오직 믿음으로 이겨내 오고 있었다.
이 지저분한 일상의 흐름을 깨뜨린 것은 다름 아닌 이방인, 카얄 네세르.
발렌시아 왕족 네세르 가의 서자이자 유력한 차기 '끝에 서는 자', 카발의 후보였던 그가,
오랜 기간 동지로 함께 혼돈의 조각들을 막아온 그가 뛰쳐나갔다.
"구원의 검은별이 내려오지 않은 것은 바로 저런 믿음이 약한 자들 때문이다.
영혼이 낙원에 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전장의 참혹함을 뼈저리게 깨우친 우리뿐이다.
카얄은 결국 위선자의 피를 씻어내는 데 실패하고 만 것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검은별이라고 부르는 것을
왜 이곳, 성전(聖殿)의 사람들만 붉은별이라고 부르며 무시하는가?”
한 번 지펴진 의심의 불꽃은 사그러들 줄을 몰랐다.
카얄의 탈영, 괴물의 존재, 구원의 정의, 검은별의 정체.
모든 물음의 끝에는 선생들의 가르침이, 아알의 경전에 담긴 진실에 대한 의문이 있을 뿐.
결국 그는 내지를 오가는 배에 몰래 올라탔고
그런 그를 오랫동안 지켜보아 왔던 어떤 검은 기운이 붉은 눈을 반짝이며 그를 덮쳐오기 시작했다.